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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 Nov 29. 2023

미니멀의 시작

미니멀의 시작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 지는 꽤 되었다. 굳이 연차를 따진다면 주택으로 이사를 가면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8년 차다.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주택으로 이사를 갈 때쯤..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가 티비나 책에서 종종 들리고 있어서 나 같은 사람도 미니멀이란 게 뭔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일본 미니멀리스트이자 정리전문가 곤도마리에의 책을 보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좋을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정도의 물건을 가지고 사는 게 정말 편할까? 내가 필요할 때, 쓰고 싶을 때 당장 쓸 수 있도록, 물건들을 구비해두고 있어야 편한 거라고 줄곧 생각해 왔었는데.. 티비에서 보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집들은 처음엔 하나같이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 미니멀리스트라 불리는 그들의 말은 대체로 비슷했다. 물건이 없이 정말 편하다는 것. 물건의 개수가 적으니 각각의 위치를 거의 기억하고 있어서 물건 찾는 게 쉽고, 바닥에 널브러질 물건이 없으니 청소도 후딱이다. 그릇이 몇 개 없어서 설거지도 금방 해치운다. 식기세척기가 필요 없다. 사야 할 물건이 없으니, 돈을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물건이 많으면 그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또 다른 물건이 필요하다. 소비는 소비를 부른다. 하지만,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니까.. 그런데 그들은 다른 논리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집을 한번 둘러봤다. 결혼할 때 장만한 33평 국민평형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 당시 4살 혹은 5살(기억이 잘 안 난다.. 그즈음이다.)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우리 집은 아이 장난감과 아이책들로 집 안 곳곳이 물건으로 꽉 차 있었다. 다른 가정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니, 아이 키우는 집에 물건이 많은 건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 더 심한 집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삶은 대중적이었다. 남들이 살아가는 대로 특별한 반항 없이 비슷하게 살아가는 게 내 삶의 기준이었다. 결혼할 때쯤 큰 가구가 유행이라 우리 집 소파, 침대, 식탁, 심지어 밥솥까지도 대용량으로 구매해서 살림살이를 채웠다. 그렇게 해야 결혼에 충실히 임하는 거라 생각했다. 물건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가 맞추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물건에 지쳐가고 있기도 했고, 주택이라는 색다른 공간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나도 미니멀이라는 단어에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반복이라는 게 참 무섭다. 처음엔 이상하리만치 거북했던 것들도 자꾸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지고 정이 든다. 미니멀도 나에겐 그러했다. 거북스럽게 다가왔으나 어느새 정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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