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더 비기닝
부심의 시작은 1984년 가을, 그러니까 내가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소위 “체력장”이라는 일종의 체력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100미터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제자리 멀리뛰기 등 다양한 종목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1천 미터 오래 달리기”였다. 그때는 나도 몰랐다. 이것이 나의 “부심”이 될 줄은...
체력장을 준비하는 그 해 여름 체육시간부터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활과 사회생활, 교회 생활까지를 통틀어 나는 모든 오래달리기에서 1등을 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오래 달려도 별로 지치지 않고, 남들은 다리가 풀려버리는 결승점에서 나는 오히려 힘이 남아돌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1천 미터 달리기가 있었는데 마지막 바퀴에서 1등으로 달리던 육상부 재근이 마저 앞지르고 내가 1등을 하자 모두 경악했다. 뒤에서 “강인구 이 개새끼야”를 외치던 재근이는 그 뒤로 육상부를 그만뒀다.
20대 이후로는 오래달리기를 할 기회가 없다보니 그렇게 나의 “오래달리기 부심”은 시간 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다 몇 해 전, 문득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불기 시작한 러닝 열풍도 한 몫 하기도 했는데, 열풍도 열풍이지만 추억의 부심과 건강관리 필요성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롱한 러닝 스타일로 치장한 러닝 크루들의 모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운동화에 반바지, 면티 하나 입고, 어느 날 저녁 나의 몇 십 년만의 러닝이 시작되었다. 첫 목표가 정확히 기억이 난다. 아파트 앞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 저 밑의 유진상가까지 약 500미터의 곧게 뻗은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첫 목표였다. 두근두근...이미 내 마음에는 부심이 차올랐다. 힘차게 내달렸다. 당연히 오버 페이스는 기본이었다. 그런데, 300미터도 못 가서 멈추고 말았다. 숨이 너무 차올랐고, 무엇보다 무슨 문제인지 허리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몇 십 년만의 나의 첫 러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부심”이 “수치심”이 되어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레치를 내고야 말았다. 다행인건 오기가 생겼다. 잘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신발’에 돌리고 그 날 바로 나이키 전문 런닝화를 검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