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식스, 망한 회사 아니었어?

_ 내가 몰랐던 러닝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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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중고생들은 범표, 기차표, 말표 같은 6-70년대 토종 브랜드의 신발을 동네 시장에서 사서 신고 다녔었다. 교복을 입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발 색상은 흰색 아니면 검은 색이었고. 디자인이랄 것도 없이 모양에 개성은 없었다. 게다가 내구성은 얼마나 떨어지던지 전속력으로 달음박질하다 방향을 갑자기 바꾸기라도 하면 신발 밑창이 동째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복 자율화” 정책이 시행되며 바야흐로 “운동화 전성시대”가 개막되었다. 교복은 사라지고 청바지나 면바지, 다양한 색상의 옷들을 입게 되면서 더 이상 범표, 기차표, 말표 신발을 신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때 등장한 국산 브랜드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 대장은 삼화고무에서 만든 타이거였다. 지금 보면 영락없는 ‘아디다스 짝퉁’인데 아디다스를 모르던 시절이라 타이거의 인기는 대단했다. 뒤이어 아티스, 까발로 등의 신발이 뒤이어 나왔는데 우리 동네 같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비싸서 못 신고 ‘나이키 짝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페가수스를 신었다.


그러나 국산 운동화의 전성시대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했으니 이유는 해외 브랜드들 때문이었다. 나이키, 미즈노, 아식스, 푸마 등등 당시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해외 브랜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배에서 다섯 배나 하는 사악한 가격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돈 있는 집안 아이들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국내 운동화 지형도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국산 브랜드 운동화도 프로스팩스, 프로월드컵, 르까프 등을 출시하며 애를 썼지만 해외 브랜드의 인기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나이키가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아식스나 미즈노 같은 일본 브랜드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운 좋게’도 평창동 사는 정훈이의 짝이 되었는데 그 덕분에 정훈이가 신고 온 아식스를 만져도 보고 신어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싸구려 인조가죽으로 만들었던 국산 운동화와 달리 아식스 가죽의 질감과 완성도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영롱하고 완벽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십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이키는 더더욱 흥했고 뒤이어 아디다스가 입지를 굳혔고, 리복, 휠라, 베네통, 언더아머 등 신흥 강자들의 등장 속에 내 기억에선 아식스는 완전히 잊혀졌다. DNA에 새겨진 반일 정서도 한 몫 했었는데 아식스나 미즈노 신으면 “쪽바리 새끼”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러닝을 시작하고 신발에 관심이 생겨 쿠팡에서 러닝화를 검색하던 어느 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러닝화를 검색해 보니 “아식스 러닝화”가 어마무시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이었다. ‘아식스, 망한 회사 아니었나...’ 내 생각은 완전히 ‘모르는 소리’였다. 내 기억에서 잊혀진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식스는 스포츠 브랜드 절대 강자로 완벽하게 탈바꿈하고 있었다. 메타 스피드, 매직 스피드, 슈퍼블라스트, 노바블라스트, 젤카야노, 젤님버스 등 레이싱화와 안정화, 쿠셔닝화 모든 부문에서 압도적인 라인업을 가지고 전세계 러너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식스 젤님버스 26 파리 에디션’을 두 켤레 사서 아내와 같이 신고 뛰었다. 아쉽게도 내 발에는 잘 맞지 않아 당근을 통해 팔고 내 발에 맞는 나이키를 주로 신게 되었다. 첫 러닝화 ‘인빈서블2’와 ‘인빈서블3’를 거쳐 카본화 ‘베이퍼플라이3’를 신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 부산 출장 중에 온유어마크에서 구매한 첫 안정화 ‘브룩스 글리세린22 GTS’ 까지 모두 네 켤레의 러닝화를 만나보았다.


아식스의 변신은 충격이기도 했지만 좋은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다. 살다보면 누구나 ‘변화’ 앞에 서게 된다. 싫든 좋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아식스는 그 변화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꼭 변화해서 기억 되고 살아남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누군가는 변화 보다 지금을 유지하며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억 되기 원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면 ‘변화’에 대답해야 한다. 아식스가 했던 대답을 지금 우리도.


뱀발.

현재 아식스는 “스포츠 전문 브랜드”로 자리 매김 했고.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아식스의 대중적인 일상화는 “오니츠카 타이거”라는 브랜드로 지금도 일부 마니아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나도 오니츠카 타이거를 신는다. 무려 후쿠오카 면세점에서 산 신발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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