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성취감의 관계
고찰 하나, 사회 초년생과 성취감에 대하여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작년 10월, 대학 4년간 골머리를 썩이던 취업 걱정이 끝이 났다. 그래도 남들이 이름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작지 않은 계열사. 스펙 낮고 걱정도 많았던 나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간단히 세상 모든 걱정이 끝난 줄 알았다. 바보같이.
그렇게 사회인으로서 내디딘 첫 발은 평범한 공돌이들의 숙명이자 정착지, 대기업의 지방 공장이었다. 내부에서 바라본 대기업은 그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씩의 부품이 되어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부품에게는 저마다의 이름이 없다. 규격은 정해져 있을지라도, 볼트 개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름 없는 부품으로 살아간다는 건 슬픈 일이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기초적이면서도 실수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잘해도 티 안 나고, 못하면 손가락질받는 그런 일이다. 물론 일을 배우고 나의 경험이 늘어감에 따라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과 의견도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 초년생의 입장으로서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회사를 다니며 우리 과장님께서 내가 가장 많이 해주셨던 말씀은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이다. '열심히'보다는 '잘', '배우기'보다는 '성과'가 우선시되는 것이 당연한 조직이며, 급여를 받는 입장으로서 당연히 이에 부합하는 행동과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이렸다.
그렇게 일을 하며 몇 개월이 지났다. 어찌어찌 버티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으나, 행동은 매일 똑같았다. 주어진 일을 하고, 내가 해낸 일은 당연하다시피 회사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쉽게 말해 내가 만족할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돈만 받으면 되는 야속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허도령이는 생각보다 성취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나 보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수업을 듣고, 과제를 내고, 시험을 보며 내가 한 일에 대한 피드백과 기록이 확실히 남았기에 성적이 잘 나오면 괜스레 기분도 좋았었는데, 회사는 아니었다. 못하면 쪼고, 잘하면 무반응인 이 체계는 내 마음을 부싯돌로 만들어 버렸다.
스스로가 깎여 가는 느낌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유사 한량 대학생 시절 좋아하는 영화를 잔뜩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나는 이제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이 난다.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2~3시간도 되지 않는 요즘, 온전히 나 스스로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시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다고 가만히 먼지로 사라질 허도령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남아야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미련한 놈일지언정,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지언정, 이렇게 본인의 의견을 글로 녹여내겠다. 눈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스스로로 남기 위해서 글을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