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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Aug 12. 2021

깨진 액정은 어딘가 빈곤을 닮았다

고찰 둘, 마음의 빈곤에 대하여

핸드폰 액정이 박살 났다. 보기 무안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꺼진 검은 화면으로 내 얼굴도 깨져 보인다. 임시방편으로 투명 테이프를 두르며 함께 한 4년을 떠올려 본다. 군 전역 후 새롭게 출시되었던 나의 S8+, 대학교 후반전을 함께 하고 여자 친구와 나를 이어준 고마운 존재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었던 든든한 지원군의 얼굴에 처음으로 거미줄이 처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주말 간 매번 상경하는 본인이지만, 이번 주는 에어컨 지휘권이 없는 본가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무료한 주말을 보내던 중, 자취방 밖으로 한 번은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이 지경이 되었다.


론 위즐리의 마법 지팡이 마냥 테이프를 칭칭 감은 핸드폰, 일단은 작동한다. 안도의 한숨. 급한 불을 끄고 보니 깨진 액정은 어딘가 빈곤을 닮아 있다. 우선은 생활하는데 직접적인 문제는 없어 보이나 언제든지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빈곤함은 모든 것이 마지막 기회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난다. ‘부자와 가난한 이는 무언가 도전하여 실패했을 때 재기할 수 있는 기회의 유무로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빈곤함은 물질적인 면 이외에도 정신적인 면에도 적용된다 생각한다. 빈곤함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일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그랬다. 요즘도 완전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창 걱정과 자기 연민에 중독되어 살던 시절엔 정말 사건 하나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지는 비가 개미에게는 처참한 홍수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되는 날에는 우울감에 젖어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기에 나는 정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시험을 망쳐서 학점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혼자 죽으면 어떡하지?’, ‘취업 못해서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등 걱정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졌다. 가난한 마음은 본인을 옥죄어 시야를 좁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무언가 도전하는 것이 늘 두려웠다. 물질적인 빈곤이 그렇듯 마음의 빈곤도 더 큰 빈곤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코로나로 인한 좌절, SNS를 통한 타인과의 비교 등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버린 요즘, 가난한 마음을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흔해졌다. 한번 마음으로 넘어져 본 나는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벗어나기 힘든 것인지 안다. 그렇기에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은 핸드폰처럼 새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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