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한 올림픽을 돌아보며
고찰 셋, 스포츠 정신에 대하여
올림픽이 지각했다. 그것도 1년이나.
그래서인지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골판지 에디션 침대를 포함한 선수들의 숙소 문제들부터 무더운 날씨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예상치 못한 무더위에 컨디션 저하를 겪었다. 대표적으로 완주 이후 구토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금메달리스트 크리스티안 블룸멘펠트, 테니스 경기 이후 3번이나 라켓을 집어던진 다닐 메드베데프 선수 등이 그렇다. 무더운 날씨에 짜증을 참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인생이 걸린 경기를 전 세계의 시선 앞에서 치르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또 이토록 가혹한 상황 속에서 스포츠 정신을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오늘은 그래서 그 스포츠 정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전에 우선 잠시 다른 길로 새어 단어 하나를 소개하며 시작해보겠다.
"Touché", 내가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 하나이다. 어원은 펜싱 용어로, 상대방에게 스스로가 당했음을 인정하는 데 사용된다. 실생활에서는 토론이나 논의 등에서 상대방의 의견이 옳고 내 의견에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 사용된다. 본인은 이 용어가 스포츠 정신의 상당 부분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정당당한 승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떳떳함, 상대방에 대한 인정 등 핵심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나에게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을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인 또한 그런 위인이 되지 못한다. 지금보다도 더 철없던 중, 고등학교 시절,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타 유저들과 사소한 일들로 언쟁을 벌인 적이 한두 번 있다. 보통 의견 충돌로 인해 얼굴을 붉히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보면 그런 일에 휘말리기도 하는 법이다.
기억하는 한 예로 액상 전자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글이 생각난다. 해당 글의 댓글에서는 전자담배의 간접흡연 위험성의 유무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본인은 흡연을 달가워하지 않기에 무조건적으로 두 흡연 방식에 대해 반감을 내비쳤다. 상대는 흡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져 전자담배를 옹호하는 동시에 비난적인 어투로 댓글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심판도 없는 인터넷 논쟁이 늘 그러하듯 보기 추할 정도로 감정 소모적인 싸움으로 번져갔다.
실제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상대를 설득시키고자 여러 자료를 뒤적여 보았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액상 전자담배에 대한 나의 의견은 실제와는 사뭇 달랐다. 인정하기 싫었다. 얼마나 창피한가, 그렇게 내질렀던 내 말들이 우박처럼 머리를 두들겼다. 그렇지만 도망치기는 더 싫었다. 설령 온라인이 얼 정 틀렸던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그것을 마주 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상대방도 사과를 받아주었고, 나의 잘못된 의견을 조롱하기보단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날 서있던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그렇게나 비틀기 어려워 보였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이 조금은 우스웠다. 이렇게 쉽게 전환될 수 있었던 우리들의 분노는 어디서 왔던 것일까? 멋쩍은 웃음의 가치란 참으로 값지다. 이것도 나름의 스포츠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해진 종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정정당당하고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부끄럼 없이 행동한다는 것은 정말 멋지고 값진 일이다. 그것이 비록 관중 없이 모두에게서 잊힐 휘발성 강한 행동이라도 우리가 앞으로 행동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패배 앞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마주 보게 된다. 욕심이 없으면 분하지 않다. 노력하지 않았으면 아쉽지 않다. 올림픽의 수많은 선수들이 억울하고 분했으리라. 그런 그들을 보고 있자면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포기 않고 최선을 다했을지 나로 써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쉬운 결과에 대한 그들의 행동을 보고 신사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게 옳을까 싶긴 하다. 4년, 아니 5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 스포츠 정신을 지켜낸 선수들이 대단한 것이라 생각된다.
정신적인 의미는 강요되면 그 의미가 변질되기 마련이다. 스포츠 정신이 중요하다지만, 비신사적인 선수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 대신 페어플레이와 신사적이고 예의를 갖춘 선수들에게 그만큼의 찬사와 감사함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