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허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도령 Aug 22. 2021

가을장마와 웅덩이

고찰 넷,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 평평한 길은 없다. 매일같이 발걸음을 함께 하는 길에도 저마다의 울퉁불퉁함과 경사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러한 사소한 특징들은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이따금씩, 마치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옹기종기 모인 물방울들은 작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어디 땅이 높고 어디가 낮은지 짚어주고는 한다. 사람들도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우산을 쓰고 웅덩이들을 피하는 상한 춤을 추며 길을 간다.


이러한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도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들에게 각자 해가 뜨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있으리라.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저마다 이쪽저쪽 패인 상처에 물이 고여 각자의 아픔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여린 것이라 이루지 못한 꿈, 받지 못한 사랑, 공포, 외로움, 콤플렉스 등 갖가지 것들로 파여 웅덩이로 남는다.


본인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요즘도 가끔 일이 풀리지 않아 풀이 죽은 날에는 한껏 움츠러들어 끙끙대고는 한다. 심지어 지금보다도 더 철이 없을 때는 본인만 아프고 외로운 줄 알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다들 웃고 부둥켜안고 살아가서 괜히 그렇게 느껴졌다. 병적으로 타인에게 감정에 대해 묻기도 했었다. 언제 슬픈지, 무얼 하면 기쁜지, 근심 없이 살아가는지 등의 질문을 상대가 질릴 때까지 들이밀었었다. 마치 감정 도둑처럼.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론적으로 슬프지 않고, 걱정 없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가슴으로는 모르지만 머리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이와 관련하여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스님과 신부님께서 함께 외로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는 영상이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쏟아 마음을 단련하고 수련하신 분들조차 외로움과 슬픔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를 보니, 각자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욱 깊게 와닿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세상은 참으로 함께 슬프구나 싶었다. 결국 감정이 결여된 채로 세상에 난 것이 아닌 이상, 이러한 아픔은 늘 자신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물이 있는 이상 비는 오며, 사람이 다니는 이상 길은 파인다. 말인즉슨, 빗물은 누구에게나 고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굳이 빗물이 있는 웅덩이에 뛰어들어 온종일 축축하게 젖어있을 필요는 없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충분히 많고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각한 올림픽을 돌아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