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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 생각

결혼을 한 이유

20대 이후의 쾌락

by 허지현



작년, 결혼을 했다. 친구들 중에선 나름 빠르게 한 편이어서 그런지 다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물론 아내를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 1순위의 이유지만 그 외에도 부가적인 이유들도 있다. 결혼식 전에는 정작 준비하기에 바빠서 제대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이번 글에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벌이를 하며 든 여러 생각 중 하나는 "나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워낙 내성적이고 혼자서도 잘 놀던 나였기에 스스로에게도 의외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나에게는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정말 나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삶의 조건 중 하나는 삶에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삶이 제공하는 여러 컨텐츠에 흥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나이를 먹게 될수록 이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람이란 동물이 쉽게 자극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쾌락의 적응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매년 새로운 친구나 공부 외에도 다른 나라의 음식, 여행지, 스포츠, 영화 등등 보편적인 생활의 컨텐츠를 처음으로 경험하며 그 즐거움에 눈을 뜬다. 그러나 세월이 겹겹이 쌓이게 되면 모든 경험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익숙함은 곧 둔감함으로 이어지고, 이전에는 짙게 느껴졌던 쾌락과 감정들은 옅어진다. 인생의 선배들이 보기엔 우스운 서른의 나이도 사실 생각해 보면 성인으로 10년을 살아온 세월이다. 이제는 슬슬 이전에 즐겁게 하던 게임이나 취미들에 점차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세상은 믿을 수 없이 빨리 변하면서도 무언가 그 중심을 지탱하는 핵심 원리는 변하지 않는 생각도 든다. 그 속에서 어른들에게 남는 즐거움은 많지 않다. 아래에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식사/음주 : 삶에 필수적인 식사는 가장 욕구를 손쉽게 채울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하루 2~3번 정기적으로 행하면서도 먹는 즉시 신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주변에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운동 : 이 세상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하나는 마음먹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 또 운동을 꾸준히 하며 신체가 변화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기에 운동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취미다.


자산 축적 : 미래의 안정성을 위해서든 성공의 척도를 자산으로 삼아서든 돈 또한 하나의 가시적인 지표이다. 이를 축적하면서 증식하는 자산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행 :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극을 찾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문화 속에서 피어난 생활양식을 보며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한다.


인정욕구 : 어린 시절, 타인을 인정하거나 인정받는 것은 제법 쉬웠다. 내가 모르는 바도 너무 많았기에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공감하면 되었는 데다가, 살아온 세월이 적고 주변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생활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로 분야가 각자 달라지며 일을 하게 되면 주변인들은 나와 세대 차이가 나고, 가까웠던 지인들은 나와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은 더욱 인정받고 싶은 갈증을 느끼는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이러한 예시들 속에서 과연 내가 이전 취미들과 다르게 질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즐거움이 어떤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가장 적합한 대답이 결혼이었다. 늙어서도 매일 새로울 수 있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뿐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나와 함께 변해가며 서로 의지하며 축적되는 관계는 결혼뿐이라고 결론지었고, 이에 따라서 열심히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았고, 결혼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전체적인 내용은 어디까지나 필자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이렇게 느꼈기 때문에 결혼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며, 결혼하지 않고도 자신이 삶의 보람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고 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인 이유를 하나 첨언하자면 역시 자녀 계획이다. 필자는 자녀를 통해 삶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녀의 삶을 자신의 삶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자신만을 투영하여 양육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께서 나를 기르실 때 다양한 체험을 시켜주시고 이를 뿌듯하게 바라보셨던 것처럼 나 또한 이를 느껴보고 싶다. 나의 자녀에게 이러한 기쁨을 소개해주는 안내원 역할을 하며 대리만족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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