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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Nov 30. 2022

매일매일이 시험인 사회생활

고찰 열여섯, 모호한 평가 속 불안에 대하여


첫 회사에 다닐 당시, 한 선배는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동시에 매일매일이 시험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당시에 나로서는 그 말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회사를 한번 옮기고 끽해야 직장생활 만 2년이 지난 지금은 그 말이 이전보단 조금 더 와닿는다. 


학창시절에는 모든 평가가 계획되어 있었다. 짧고 굵직한 시험들로 생활이 평가되었으며, 이는 늘 미리 예고된 후에 찾아왔었다. 같은 타임라인에 놓인 학우들과 함께 심적으로, 지적으로 시험을 준비하며 동질감을 느꼈고 당시에는 몰랐으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웠었다. 시험 전까지 차곡차곡 적립된 불안은 종강과 함께 해소되곤 했다. 당시 극에 달했던 긴장감과 해방감은 모두 감정의 단위가 컸다. 


취업의 문턱을 넘어 사회로 배출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필자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단위로 이루어지고, 매일 느끼는 감정의 폭도 그만큼 작아졌다.  큰 벽처럼 느껴지던 시험이 잘게 부스러져 파편들로 뿌려진 느낌이다. 회사에선 업무 처리, 사교성을 통한 협조 능력 등 많은 것들이 개인의 평가 항목이다. 이런 기준들은 공부와는 다르게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 어렵다. 연말에 고과 등급을 통지 받으면 마치 채점 과정 없이 최종 성적을 받는 기부이다. 매일매일이 시험이지만, 중간과정을 알 수가 없어 저농도의 불안이 축적될 뿐이다. 


 불안이 거슬리긴 하지만,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곤 한다. 모든 불안감은 어떤 위협이나 대상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된다. 사슴이나 토끼가 수풀 속에 사자 등의 포식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불안감과 같다. 사람들도 동물이기에 이런 불안을 느끼게끔 하는 몸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대상에 공포나 불안을 느끼지만, 그 대상은 포식자처럼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막연한 개념이다. 이 경우에는 "미래에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한 무지"가 그 대상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신 외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동갑내기들이나 놓였었던 인생 선배들 모두 조금씩은 겪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동질감이 생겨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자신의 몸 외에도 "회사"라는 개념을 놓고 보았을 때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필자가 생각하는 회사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애초에 목적이 이윤창출이기에 그 구성원들을 평가하는데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그 힘을 다른데 쏟는 것이 조직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리라.  


이런 얘기를 풀어서 하는 이유는 예전에 필자가 이런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이런 "상태의 모호함”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것이다. 물컵을 실수로 쏟아서 손이 물에 젖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해도, 누워있는 컵에서 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우둔한 생각이 아닌가? 그와 같은 이치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나 실망을 느끼는 것은 불필요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이다.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말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Grant to us the serenity of mind to accept that which cannot be changed;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을,

the courage to change that which can be changed,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and the wisdom to know the one from the other, "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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