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기
어릴 적, 당신은 꽤 많이 아팠다.
동네 이비인후과는 물론이고, 치과, 안과까지 동네 의사란 사람들은 다 만났었다.
6살 무렵부터 안경을 쓰고 다녔고, 썩어서 때운 이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축농증과 중이염은 어머니와 당신 참 오래도 괴롭혔다.
철부지 시절이었기에 각 병원에 갈 때마다 타들어가는 어머니 마음은 모른 채로 나름의 루틴을 즐기기도 했었다.
안과에 갈 때는 대기실에 비치된 만화책, 검사할 때 그 특유의 깜빡, 뚜 - 두 -두 하는 소리와 함께 바라보던 열기구 사진, 같은 건물 지하에 있던 서점 등이 참 좋았다.
이비인후과에선 마치 통화를 하듯 적외선 치료기를 귀에 대고 뜨끈뜨끈한 열기가 좋았고, 겨울에 가면 같은 건물 입구에서 팔던 계란빵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치과가 제일 원초적으로 공포스러웠는데, 이 때는 솔직히 좋은 것이 거의 없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병치레를 하며 지어먹던 쓴 맛의 약들 때문인지 당신은 밥을 참 안 먹었다.
어머니께서 밥공기를 들고 놀이터를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던 이야기는 이제 명절에 듣는 단골 소재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잘은 모르지만, 한 번은 병이 너무 심해져서 척추 마취 후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악화된 때도 있었다.
어머니 말로는 물을 떠다 놓고 누구에게 비는지도 모른 채로 간절히 낫길 기도하셨다고 한다.
정말 놀랍게도, 수술 당일 날 어차피 보나 안 보나 똑같다는 의사에게 떼를 써서 귀 안쪽을 보니 차있던 물이 갑자기 사라져 그대로 집에 왔다고 한다.
아픈 것을 떠나 돈은 돈대로 깨졌을 것인데, 부모님은 그런 내색은 한 번을 안 하셨다.
지금 월급쟁이 생활 하는 나로서는 참 경이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무튼 그런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원 없이 사주셨고, 당신의 집 거실은 늘 바퀴 달린 로봇 장난감들의 활주로가 되곤 했다.
그런 부모님의 배려 덕분인지 당시를 떠올리면 아프거나 무서웠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좋은 기억들만 한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