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동아리는 항상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감독하는 사람 없이 자율적으로 학생들이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그 자유로움과 안에서 누굴 만날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멋져 보였다. 특히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들어간 영화 동아리는 나이 분포가 꽤 넓은 오래된 동아리로, 그 특유의 한량 같은 느낌이 참 좋았다. 이 영화 동아리처럼 우리 학교의 오래된 동아리들은 이름에 "호"자가 들어갔는데, 그 대다수가 옛날 옛적 데모를 하기 위해 눈속임으로 설립된 곳이라고 한 선배가 그랬다. 나중에 그런 운동권 분위기가 사그라들며 자연스럽게 진짜 동아리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를 방증하는 것이 당시 부실의 온장판이었다. 중앙 동아리가 모여 있던 노후화된 학생회관은 아무래도 안전 때문에 난방 기기 사용을 금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영화동아리는 예전부터 설치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온장판을 그냥 썼었다. 이는 당시 동아리 부장 선배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더 직접적인 증거로는 책장을 가득히 메꾼 선배들의 방명록이 있었다. 모두의 공용 일기처럼 그림과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기록하던 장 하나하나가 모여 부실의 한 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영화 동아리는 한량 같은 느낌이 있어서 주에 1~2회 영화를 상영하면서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영화가 끝나면 늘 그러하듯 술잔을 기울였다. 때로는 인근의 술집에서, 캠퍼스 잔디밭에서, 또는 동아리 부실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주말이 되면 어딘가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영화제가 열리면 참석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고 부장이 바뀌며 운영 방침이 바뀌며 나는 탈퇴하게 되었지만 첫 입부 당시의 그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상영회에 몇 번 이상 나와야 한다는 조건 등이 붙었을 때 오히려 더 나가기 싫어졌던 게 제일 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