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3 영자신문사

대학교 시절

by 허지현

늘 예측 불허인 H친구를 따라 1학년 때 영자신문 동아리에 입부한 적이 있다. 당시 입부할 때 에세이를 써서 테스트를 봤고, 현장에서도 추가 필기 테스트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는 말 그대로 교내 영어신문을 연재하는 동아리였는데, 꽤나 본격적이어서 정식 부원이 되면 학기마다 소정의 장학금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기업 체계를 띠고 있어서 최고참의 국장 선배 아래 파트별 몇 명의 부장들이 있었다. 그 아래로는 정기자, 부기자, 수습기자 순으로 있었는데 정규 부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3 학기 이상 활동을 해야 했었다. 나의 경우는 수습기자로 6개월 정도 활동하다가 카투사에 덜컥 합격해 버려 군대로 떠나는 바람에 정식 부원이 되지는 못했었다.


당시 이 신문사의 부실은 지금은 허물어진 B관 2층에 있었는데, 안쪽에 들어가면 마치 소규모의 탐정 사무소같이 넓은 공간과 작은 방 2개가 있었다. 제일 큰 공간 끝쪽에는 공용 컴퓨터 몇 대가 있었고 이어서 대형 테이블이 몇 개씩 이어져 있었다. 보통은 그 위로 잡지나 서적, 신문쪼가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컴퓨터의 반대쪽에는 국장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방이 있었고 나머지 방 하나는 창고였다.


나름 여학생들이 많은 동아리여서 그런지 한쪽 구석에는 굉장히 낡은 나무틀로 된 거울이 하나 있었다. 동아리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두껍게 쌓인 먼지 때문에 거울은 굉장히 뿌앻는데 여선배들은 그걸 잘도 보고 립스틱을 바르곤 했었다. 나중에 보는 내가 답답해서 깨끗하게 닦았었는데, 정작 기사도 몇 번 못 쓴 내가 가장 크게 기여한 활동이 아닌가 싶다.


수습기자로 활동하면 사실상 기사를 쓸 기회보단 일부 자료 조사나 잡무를 처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나마 쓴 기사들도 실제 신문이 아닌 간략한 1~2편의 온라인 기사였다. 잡무로는 동아리 부실을 교대로 돌아가며 지키는 것, 그리고 주기적으로 교내에 신문 가판대에 영자신문을 배급하는 일 등이 있었다. 신문을 돌릴 때는 새벽 일찍 모여 봉고차 적재함에 타서 교내를 이동하며 신문을 돌리곤 했는데 부원보다는 무언가 노동자 느낌이 나서 재밌었다. 물론 운전은 어떤 고용된 아저씨께서 해주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위험해서 요새는 안 하지 않을까 싶다.


동아리 자체 특성상 어쨌든 신문을 작성하는 엄연한 일을 하는 곳이었고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었기에 애매한 부조리는 늘 있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쪼잔해지는 그런 일들이었지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운영하는 조직이었기에 분명 탈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예로 졸업한 선배들을 초청하여하는 행사에서 경품 뽑기가 담청 되어도 강제적으로 포기하고 선배들에게 양보하게끔 하거나 하는 애매한 강요 등이 있었다. 왜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하냐면 역시 내가 당했기 때문이겠다.


초기에는 동아리 기수 동기들끼리 MT도 같이 가서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나름 친하게 지냈지만 탈퇴하며 대부분 멀어졌다. 그래도 여기서 날 끌여들인 친구 H를 비롯해 대학 졸업 후 가장 친하게 지내는 YJJH 멤버 3명을 만났기에 입부했던 거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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