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첫 유학을 마친 뒤에도 영어학원은 계속 다녔었다. 대신 이전처럼 선행 학습을 위한 학원보다는 토익이나 토플 등의 공인인증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학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 입장에서 영어 쪽을 계속 강점으로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다닌 많은 학원 중에 역삼 쪽으로 다니던 토플 스피킹 학원이 있었다.
건물은 꽤 높은 편이었고, 학원은 3층 이상의 높이였었다. 근처에는 KFC가 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때로 야식으로 먹었었다. 여러 반 중에서 스피킹 쪽 수업을 들었었고, 레벨 테스트를 봐서 반을 배정받았었다. 수업은 개인 자리마다 컴퓨터가 설치된 수강실에서 헤드셋을 끼고 수업을 받았었다. 최대한 수강생을 많이 받으려고 책상을 따닥따닥 넣어둬서 그런지 방 자체는 비좁은 편이었다. 나름 열심히 다니면서 반 하나를 올리기도 했었다. 선생은 굉장은 독한 노처녀였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이 선생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다.
보통 인간관계가 좁은 나는 학원에서도 말이 잘 안 통하면 굳이 친구를 사귀지 않고도 잘 지내는 성격이었다. 이 학원에서 어쩌다 죽이 잘 맞는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는데, 딱 하루 수업 도중에 몇 마디 소곤소곤 떠들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선생은 정색하며 한 번의 경고도 없이 바로 부모님을 호출했었다. 심지어 더 억울했던 것은 같이 얘기하던 친구는 전혀 페널티도 없이 무난하게 눈 감아준 반면에 나는 다시 반을 유급시켰다. 어머니께서 호통을 치며 다른 반 애들에게 방해가 돼서 내렸다고 했단다. 그때는 마냥 눈물을 흘리며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억울해서 그때 상황이 아주 생생히 기억난다. 장기간 수업을 방해할 정도였으면 모를까 단 세 마디에 다니면서 월반한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하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인생 두 배는 살아 돌이켜보니 그때는 참 순했다. 억울한 것을 따질지도 모르고 혼자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던 내가 불쌍하다. 상황을 잘 설명하고 오히려 따졌으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호출하기 전 나를 따로 불러내서 상담을 하면서 꿈을 묻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이룰 수 없다느니 더 노력해야 한다느니 말을 했었다. 그때는 창피하고 서러워서 울음을 참아내며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가르치던 선생도 그런 식으로밖에 배우며 자라지 못해서 그게 참된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저 화풀이였을까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가끔 이런 기억처럼 그 학원의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교실에서 나 혼자 남아 분을 삭일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잊고 싶을 때도 많지만, 마음대로 잊히지도 않고 이 또한 내 일부분이기에 지금은 그냥 놔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