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3 은행사거리

초등학교

by 허지현

노원구에는 학원가들이 즐비한 은행사거리라는 거리가 있다. 번화한 이 거리는 사교육으로 유명한 곳이었어서 우리 세대에서 노원에서 자란 친구들이 학원을 다녔다 하면 아마 과반수 이상은 이쪽으로 왔었을 것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과목들을 개별 수업 외에도 종합반으로 운영하였는가 하면 그 외의 과목들을 가르치는 곳도 많았다. 밤늦게까지 빼곡히 주차된 학원 버스들을 배경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포장마차 앞에서 떡볶이나 어묵, 혹은 다른 불량식품들을 먹으며 다음 수업을 기다리던 학생들이 많았다.


어릴 적 나는 이 사거리에 심어진 가로수들이 전부 은행나무여서 은행 사거리라 불리는 줄 알았다. 가을이 되면 노란 잎에 더해 모두가 밟고 지나간 은행열매 때문에 온 거리가 꾸리꾸리한고 고약한 냄새로 그득했는데, 나는 그 냄새가 썩 싫지 않았다.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시절, 학원들이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었는데, 그러나 이런 것에 질 학원이 아니다. 다들 커튼을 치고 불을 잠시 껐다가 다시 수업을 이어나가기도 했었다. 이때의 교육열은 우리 집 외에도 어마무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로 분류하긴 했지만, 은행사거리는 내가 유학을 마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신세를 지던 곳이다. 구석구석에 있던 식당가나 서점을 탐방하며 혼자서 맛집을 찾던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어느 오래된 상가에 있던 중국집과 어릴 적 이누야샤 33권을 샀었던 한 지하의 서점이다. 또 어릴 적 이곳 근처의 안과에서 진료를 보고 안경점에서 처음 안경을 맞춘 기억도 있어 내 소년기가 녹아든 곳이라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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