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020년대인 요즘, 제사 지내는 집도 많이 사라지고 명절에 모이지 않는 곳도 많지만 2000년대에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제사나 명절 모임이 아주 일반적이어서 우리 집도 명절에는 큰아버지 댁과 외할머니 댁을 방문하고는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막내이셔서 친척 집에 가면 사촌들은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났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군대에 간 형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 기억 속 형, 누나들은 우리랑 같이 놀아주기보단 자기들끼리 놀기 바빴었다. 그나마 나이가 제일 비슷하던 Y.S. 형과 B.B. 동생은 나와 여동생과 자주 어울려 놀았다. 아파트 슈퍼에 가거나 장기, 컴퓨터 게임, 축구 등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아니면 형 집에 있는 만화책을 읽었다. 그러고 놀다 보면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왔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차례를 지내는 것을 도왔다.
할아버지는 한복을 입으시고 알지도 못하는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셨는데, 기묘한 느낌이 났었다. 밥풀로 붙였던 한자 빼곡한 종이를 불에 붙인 뒤 밖 계단에 버렸는데, 거기에 허리를 굽혀 인사드리며 조상들을 배웅했었다. 후에는 날 포함한 아이들은 제사 나무 그릇을 헝겊으로 닦은 뒤에 잘 정리했고, 제삿밥을 나누어 먹었다. 아주 예전에는 큰아버지네서 하루 묵어서 자고 가기도 했으나 우리가 점차 커가고, 어른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며 그런 일은 점차 줄어서 제사도 지내지 않게 되었다.
아,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기도 했었다. 거기에는 당시에도 오래된 컴퓨터가 있어서 Y.S. 형과 게임을 하고는 했었다. 광산을 한없이 내려가는 게임, 보글보글, 스트리트 파이터 등을 한 기억이 난다.
방학동 소재의 외할아버지네도 방문했었는데, 뒤에는 오래된 슈퍼가 있어서 가끔 오락기를 하기도 했다. 그 집에는 외할아버지가 자주 앉아 계시던 나무 흔들의자가 있었는데, 내가 직접 앉아 본 얼마 안 되는 흔들의자이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잠시 운영하셨던 헌 책방을 하셨었는데, 가끔 원하는 책이 있으면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다. 투명인간 같은 소설책이나 과학 서적도 주셨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네의 집에서는 식사를 하고 외할머니의 어디가 아프다는 둥의 불평을 듣고 시간을 보내다 집에 오고는 했다. 큰집과는 달리 서로 겹치지 않게 시간을 두고 방문하여 외조부모님을 만나고 오는 색채가 더 강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