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4. 경양식 식당

초등학교

by 허지현

2000년대의 외식문화는 꽤나 단순해서 한식, 중식, 일식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양식집이 별로 없었다. 대신 우리에게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한식파이신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지인들과 만나거나 친구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종종 우리를 데려가시고는 했다. 그중 내 기억에 남는 곳들은 정원이 있고 흰 식탁보를 깐, 유럽식 분위기를 흉내 낸 곳이었다. 경양식 식당에는 늘 크림수프가 나왔고, 나는 항상 중요한 의식이라도 되는 마냥 후추를 열심히 뿌려 먹었다. 넙데데한 그릇 위에 돈가스가 나오면 그 옆에는 밥과 양배추 샐러드가 작게 얹혀 있었다. 식사 후 어른들이 수다를 떨 때 나와 동생을 비롯한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았었다. 적당한 야생 속에서 우리는 어느 날 도마뱀이 꼬리를 떼어내고 도망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물가 근처에서 커다란 거미집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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