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중학교

by 허지현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좀 카리스마 있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교무실에 가서 자리를 보면, 책장에 내가 좋아하던 케빈 앤 홉스 영문판 만화책이 꽂혀 있었다. 그래서 혹시 빌려서 봐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선생님은 늘 다음에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끝내 빌려주지는 않았다. 한번은 옆에 있던 애가 그걸 보고 웃었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나름 영어로 된 책이라고 변호해줬던 기억이 난다.


2학년 말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도 기억난다. 그때가 방학이어서였는지, 반 애들한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가지는 못했었다. 그렇다보니 선생님께선 마지막으로 반 애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영상으로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애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되게 컸던 것 같다. 그래서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하나하나 애들 이름을 부르면서 뭐가 미안했다, 뭐가 미안했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소심했던 것 같다. 이때만 해도 헤어짐이 많이 아쉬웠나보다.


나중에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중학교 동창 H군에게 그 얘기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말로는 애들은 선생님께서 시켜주신 짜장면을 먹으면서 그 영상을 틀어놓고 봤다고 하더라. 어차피 잘 들리지는 않았을 거다. 큰 화면으로 틀어놨다는데, 내가 직접 안 봤으니까 망정이지 거기 있었으면 굉장히 창피했을 것 같다.


아무튼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선생님 복은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05-04 졸업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