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Book(2018)
인종이 맞닿은 곳, 차별 대신 우정이 싹트다(7/10)
세상을 살다 보면 설명서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상상치도 못한 곳에서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대체로 그런 일들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인종차별 또한 그렇다. 통계적으로 기반하여 멋대로 추측을 하게 되면 어느새 차별이 되고, 그렇다고 사사건건 상대를 주의하며 눈치를 보면 그것 또한 차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영화 “그린북”은 1962년 미국, 상류층을 위해 연주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와 그의 투어를 위해 고용된 운전수 토니 발레롱가의 싹트는 우정에 대한 영화다. 토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입담과 주먹으로 길거리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 또한 흑인들에 대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나온다. 영화 초반부 집의 보수를 위해 집을 방문한 두 흑인의 입술이 닿은 잔을 버리는가 하면 셜리 박사와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뒤에도 한 경찰이 그를 보고 “반은 흑인이나 다름없구먼”이라고 하는 장면에서 주먹부터 나가고 본다. 그런 그가 가족으로부터 장기간 떨어져 흑인인 셜리 박사와 처음 여행을 하게 될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딸랑 자동차 한 대와 흑인을 위한 운전사들의 여행안내서 ‘그린북’이다.
그린북에는 동네별로 흑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나 식당 등이 기재되어있지만, 공연장소인 식당에서 식사를 거절당하거나, 계약서와 다른 취급을 받을 때 등의 가이드 따위는 없다. 이런 고비들마다 토니는 자신의 인생관 하나로 부딪혀 해결해간다. 굽혀야 할 때는 굽히고 싸워야 할 때는 싸우며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할 일을 할 뿐이다. 그가 셜리 박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아도 단순 고용주나 흑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대화 사이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서 그저 교감을 하기 위해 꺼내 든 수단이었을 뿐이다. 박사와 교감하고 그의 연주에 빠져들며 토니는 그에게 정을 붙이게 된다.
늘 기품을 유지하고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셜리 박사는 자연스레 그에게 빠져든다. 인종차별은 사람을 늘 긴장하게 만든다. 필자가 외국에서 잠시나마 살며 받아본 차별만으로도 긴장을 늦추기 어려웠는데, 대놓고 물리적 폭력이 오가던 시절에는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흑인 사회에서는 너무도 상류층이어서, 백인 사회에서는 흑인이어서 어디도 끼지 못하는 셜리였기에 그 중압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드디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고, 그런 모습은 토니에게 다른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다른 돈벌이를 제안했을 때 정식 직책과 연봉 인상으로 붙잡으려 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필자가 재밌게 느낀 점은 사실상 두 인물은 영화 초반부와 끝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행 중간에 옥석을 훔친 토니는 돌려놓으라는 박사의 말에 그렇게 하는 척만 하고 끝까지 돌을 챙긴다. 셜리 박사는 마지막 차별 가득했던 마지막 공연에 퇴짜를 놓고 흑인 식당에 들어가 그가 늘 고집하던 Steinway가 아닌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그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피아노 위에 있던 위스키 잔을 내려놓는다. 그렇지만 두 인물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 그린북이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인종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뒤바꿀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의 범위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대 사람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생각을 보여주면 인종을 떠나 누구든지 교감하고 우정을 쌓을 수 있다. 그런 우정에는 그린북 따위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