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수업을 들을 때 아무래도 교수님들은 옛날과 똑같은 문제를 많이 내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족보를 받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물론 없다고 수업에 못 따라가는 것은 아니나 1학년때부터 실험과목이나 전공과 관련된 과목이 9할을 차지하던 공대생들에게는 족보의 유무에 따라 학과 생활이 천지차이였다. 가장 정석적인 입수 방법은 자기 학번에서 연도를 제외한 나머지 뒷자리 번호가 같은 전년도에 입학한 선배로부터 전달받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관계를 '뻔선-뻔후'라고 불렀고, 의례적으로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며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해 주는 밥 약속, 즉 '밥약'을 통해 친해지기도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내 뻔선은 다른 학교에 가겠다며 학교를 그만두어 날 따로 챙겨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1년 후의 이야기지만 뻔후로 들어온 친구도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친구였다. 과학고 출신이라 그런지 무뚝뚝하고 공부도 잘해 보여 딱히 내 도움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실험 수업 때 필요한 실험 고글이나 랩코트를 주며 밥을 사줬었다. 그마저도 고마운 내색 없이 휙 챙겨버리는 모습에 있던 정도 다 떨어졌었다.
아무튼 내 족보는 그런 경로로 받지 못했고, 전에 이야기했던 영화 동아리에 있던 선배가 그래도 공부를 좀 잘하는 편이어서 거기서 받아서 어찌어찌 해결하고자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워낙 학번 차이가 많이 났다 보니, 1~2년 전 선배들의 족보 문제를 받아서 꾸준하게 선배들과 얘기하던 친구들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