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타인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스마트폰을 처음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내 일상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공부한답시고 핸드폰을 없앴다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스마트폰이 생기게 되었을 때도 이 버릇은 이어졌다. 그렇게 핸드폰으로 대학교 동기들의 모습이나 칙칙한 캠퍼스 생활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국대학교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열렸던 축제(아마 개교 108주년 즈음이었을 것이다)를 고등학교 동창 2명 WM와 WS과 같이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는 연등이 주렁주렁 장식된 알록달록한 남의 학교를 쏘다니며 구경하였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들 중 WM 이는 핸드폰이 아닌 DSLR 카메라를 들고 나름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져봤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내가 달을 확대해서 찍으려는 모습을 보고 "너는 확대를 해서 찍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카메라를 써보는 건 어때?"라고 물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용돈을 모아 광학 50배 줌이 되는 디지털카메라(캐논 파워샷- canon sx50 hs)를 사게 되었다. 한동안은 그 카메라를 가지고 출사를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특히 보름달이 둥글게 뜬 날이면 똑같은 달 사진임에도 원 없이 셔터를 누르던 기억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광학 줌 기능만 보고 구매했고 비록 DSLR이나 미러리스는 아니었지만 초보자인 나에게는 오토로 찍히는 디지털카메라가 오히려 어울렸다.(사진에 딱히 진심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친구들과 예술의 전당에서 퓰리처전을 구경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의 카메라를 든 출사 방랑기가 시작되었다.
HS 학원에서 만났던 친구 SY이나 연세대에 진학했던 형을 따라 친구들 학교 탐방 투어를 하기도 했다. 보통은 고등학생 때 가고 싶은 대학교를 탐방하지만, 나는 이미 대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다른 친구들의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방문해보곤 했다. 서울대학교에 가서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샤' 모양의 정문을 거꾸로 보면서 "서울대 학생들은 이 '샤'자를 매일 안쪽에서 보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연세대에 다니던 형은 송도 캠퍼스에 있었는데, 신촌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송도로 방문했었다. 당시 송도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허허벌판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달랑 연세대학교 투어를 하고 돌아왔다. 그것을 보고 송도는 안 가길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송도 생활을 1~2년 정도하고 신촌에 와서 공부하는 시스템으로 기억하는데, 나였다면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할 게 없으니 연세대 송도 친구들은 음주가무에 더욱 집중한다던 형의 말도 기억난다. 건국대나 인근의 어린이 대공원, 한양대 등 친구들의 대학을 탐방하다가 또 가봤던 곳 중 하나가 강남 대성학원이다.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재수를 했었던 동기 형들이 어떤 곳에서 공부를 했었는지 궁금해져 한번 가봤었다. 그 학원 인근에 있는 교대도 슬쩍 구경하러 갔다.
출사에 대해 이어서 설명하면, 정말 다양한 번화가를 혼자서 쏘다녔다. 당시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서 누구의 발걸음에도 맞추지 않은 채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홍대, 여의도, 동묘, 청량리, 마장동, 동대문, 영등포, 강남, 강동 등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녔었지만 서울의 중심인 사대문 안쪽으로 가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청계천에서 일하시다 보니 지나가다 종종 들르기도 했었다. 특히 청계천 거리는 거리별로 테마가 정해져 있어서 1가의 헌책방 거리를 지나 가구, 소방기구, 전등, 약국, 애완동물 등등 다양한 구경을 하기 좋았다. 번잡스러운 광장시장에서 아버지의 숨은 맛집들을 소개받아 다니기도 했었는데, 당시는 유튜브 유행 전이라 맛집 블로거들이 있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던 때라, 개개인의 숨은 맛집들이 정말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맛집들을 방문해 보곤 했었고 홀로 다닐 때는 마약김밥을 사 먹기도 했다. 아버지는 모녀김밥에서 파는 마약김밥이 제일이라 하셨다. 닭 한 마리, 육회, 빈대떡 등의 맛집도 있었으나 혼자 먹기엔 적합하지 않아서 가족들이나 친구들하고만 갔었다.
광장시장 외에도 전태일 동상이 있던 평화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도 많이 갔었다. 꽃부터 액세서리, 각종 인테리어 물품이나 수입제품, 구두와 학과 잠바 주문제작까지 여기도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시는 분들 중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 파라솔을 있는 힘껏 잡고 버티시던 적을 찍은 적도 있다. 남대문 시장은 특히 나중에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제일 많이 갔었다.(이것도 별도 글로 써보겠다)
명동에도 갔었는데, 당시 명동은 중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을 때라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이라 완전 거리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동묘 쪽의 도깨비시장에서 헌 옷이나 고물과 다름없는 옛날 전자기기들 구경하기도 하다가 좀 더 걸어서 낙원상가에서 악기가게를 구경하거나 종로에서 카세트테이프나 세운상가 구경을 하기도 했다.
4호선 대학로 앞에도 갔었는데, 그 앞에서 기타를 들고 공연하는 코미디언을 보기도 했다. 연극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 주변만 왔다 갔다 하며 오갔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 자신보다는 주변 풍경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옷을 정말 엉망진창으로 입고 다녔었다. 나 자신보다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제2마장교처럼 작은 다리를 건너기도 했지만 천호대교 등 한강을 도보로 건너기도 했었다. 노릇노릇한 하늘 아래에서 한강을 지나며 말로만 듣던 '생명의 전화'도 보았고, 다리 위로 버스가 지나갈 때 다리가 엄청나게 흔들려서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입시어학원 때문에 몇 번 갔던 가로수길도 대학교 시절이 되어서야 제대로 가보았다. 아직까지는 옷이나 쇼핑에는 관심이 없을 때라 거리와 사람들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지나가다 버스킹 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기도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한 두 번씩은 엄청 길게 걷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한 사례가 HS 학원이 있던 역삼역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일념 하에 쉬엄쉬엄 가며 무려 7~8시간을 넘게 이동하며 하루를 보냈던 적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하철로 30~40분 정도 걸리던 노원구의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집까지를 걸어서 온 적도 있었다.
이 많은 곳들을 노다니며 눈으로, 카메라로 2010년대의 서울을 가슴에 담았던 나만의 추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