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4 등굣길

대학교

by 허지현

대학교 시절, 우리 집은 월곡역 쪽이어서 내가 다니던 학교와 꽤나 가까웠다.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는 않아서 버스, 지하철, 도보 모두 집 대문에서 강의실 문 앞까지 30~40분이 걸렸다. 그래서 돈도 아낄 겸 매일 걸어서 학교를 오고 다녔다. 학교와 집 사이에는 내부간선도로 아래로 지나가는 하천이 하나 있어서 그 길을 쭉 따라다니곤 했었다.


하천을 따라가다 보면 위쪽으로 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몇 개 있었는데, 다리 하나 아래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의자와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공용 장기판이 있어서 노인분들이 눈이 침침하실 때 와서 대결을 하셨다. 바둑판과 장기판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세상 속에서 바둑판과 장기판만 바르게 쌓여 있는 모습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하천을 지나서 올라오면 대학교 정문이 나오고, 문과 캠퍼스를 가로지르면 안암역이 나왔다. 안암역 사거리를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이공계 캠퍼스가 나와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구경거리도 많고 적당히 좋은 등굣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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