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살기 팍팍하다는 요즘은 대학생 때부터 각자 살 길을 찾기 바쁘다지만 2010년대만 해도 1학년들이 학점 관리를 한다고 하면 '뭘 벌써부터 그러냐'는 식으로 놀라는 선배들이 많았다. 그만큼 당시에는 대학교 생활을 논할 때 공부만큼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놀이 문화였고, 우리들의 놀이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공대의 특성답게 신입생 시절에는 한번 마시면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시는 동기들도 많았다만 집에서 통학하던 나의 신분으로서는 수문장 역할을 하시던 어머니 덕에 조금이라도 과음을 하는 날에는 눈치를 아니 볼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성인이 되어 술을 처음 접하다 보니 주량을 모르고 마셔 곤욕을 치른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한 번은 너무 심하게 마셔 필름이 끊겨버렸는데, 마실 물을 방에 들고 왔다가 그대로 문어발 콘센트에 붓고 다시 잠든 적이 있었다. 아침에 그걸 보고도 내가 한 짓이라 생각조차 못해 벽에서 물이 새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그 말을 믿고 수리 아저씨를 불렀다가 멀쩡한 벽이라는 설명을 들어 창피를 당하고는 그만큼 더 화를 내셨다. 아무튼 그런 큰 사건들이 있으면 잊어버리기 전까지 몇 달간은 자중을 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지방에서 올라와 입시로부터 고삐 풀린 내 동기들은 노란 등의 대학가를 뽀득거리는 새 과잠바를 입고 돌아다니며 여러 술집을 탐방했다. 특히 춘자라는 술집은 공대생들의 단골 술집으로, 들어가서 앉으면 바로 옆자리 사람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고주망태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은색 원형 테이블에 둥그런 1인용 의자와 외투 보관용 비닐 등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아무튼 그런 곳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나면 주변에서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를 사는 동기들은 비슷한 곳에 사는 애들끼리 비틀거리며 돌아갔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한 번은 아직 꽃샘추위가 있던 초봄의 밤에 한 명이 완전히 곯아떨어져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만취했다고 한다. 그를 업기 귀찮았던 나머지가 전봇대 옆에 버리고 가자고 하여 기대 놓았다가 입이 돌아갈 것 같다는 누군가의 걱정에 바로 옆에 은행 ATM 기기가 있는 실내에 그 친구를 버리고 갔다고 한다. 정말 눈물겨운 우정이 아닐 수 없다.
술게임도 많이 했다만 기억나는 건 배스킨라빈스 31, 딸기, 만두, 지하철게임, 007 빵, 아이엠 그라운드(이중모션) 정도이다. 악질인 게임을 하나 더 꼽자면 그랜다이저라는 게임인데, 말만 게임이고 마시면서 배우는 거라고 한 명만 집중적으로 술을 먹이는 게임을 빙자한 괴롭힘도 있었다. 비슷하게 공산당 게임이라는 것도 있었다. 짓궂지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날 정도로 웃겼다.
학과 행사 때 우리 과가 모이면 FM이라는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마시다가 여러 명이 한 명을 지목하고 FM을 여러 번 외치면 일어나서 학교, 학부, 학과별 구호를 외친 뒤 자기소개를 하며 건배를 하는 그런 문화였다. 틀리면 술을 먹이고 제대로 할 때까지 다시 시키고는 하였다. 창피하고 부담스럽긴 했다만, 나름 재밌는 문화였다. 우리의 경우,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 안녕! 안녕! 안녕하십니까! (어이!)
민족 K대 - (어이!) - 강철공대 - (어이!) - 열혈 00 - (어이!)
(자기 수식어 ex) ~~에서 제일 잘생긴/~~를 맡고 있는 등등)
(본인 이름) 당차게 인사드립니다!!" ]
아무튼 이때 우리들은 술을 마시고 학교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고, 몰래 노래방에 소주를 들고 와서 마시다 취해서 사장님께 한 소리 듣기도 하고, 여러모로 미숙했다. 그렇지만 취해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 미화된 것인지 즐거운 추억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만이 음주가 미숙해도 되는 나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