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대학교 1학년 때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를 때 느꼈던 그 어색한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장례를 치르기 전 상주로서 열심히 절을 하느라 힘들었던 기억도 나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면 눈물을 흘리셨던 모습도 기억난다. 장례식장 구석에서 쪽잠을 잘 때 사촌형이 큰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를 깨우려 했으나 아버지는 나를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두라고 하셨단다.
사실 할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와 나는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 시간을 다 합쳐도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서로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아버지께서 슬퍼하시는 모습이 내게는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이듬해 산 위에 있는 할아버지 묘를 찾아 잔디를 정리하고 제사를 지냈던 기억도 있다.
외할아버지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첫 직장에 다닐 때 돌아가셨는데, 이미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쇠약해지셔서 방에 누워만 계시다 병원 신세를 지신 후 돌아가셨다. 안 그래도 야위셨던 모습이 돌아가시자 더 쪼그라든 것처럼 보여 충격을 받았었다. 외할아버지도 나와는 너무 다른 시대를 사셔서 그럴까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헌책방을 하시던 시절 내게 책도 나누어주시고 사서삼경은 읽어봐야 한다거나 당신이 우리 대학교에서 옛날에 경비직을 해보셨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은 난다. 특히 외할머니가 좋은 사람은 아니어서 아픈 외할아버지를 잘 돌보지 않았다 보니 그만큼 외할아버지가 안타까웠던 기억도 난다.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릴 때 친할아버지 때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려나 싶었었는데 막상 여러 장식에 둘둘 말린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찔끔 났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사촌누나들이 참석하지 않았던 점도 기억난다. 그리고 상복을 입을 때 장례식장에서 검은 정장과 구두를 빌려주었다. 검은 정장을 살 때는 장례식 때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작 그런 순간이 오면 입을 일이 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나는 내 고집대로 싸구려일지언정 늘 경조사 때는 내 양복을 입고자 한다.
할아버지들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내게는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일이어서 희미했던 '죽음'이라는 개념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