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화의 아버지, 타츠미 요시히로의 삶과 그의 작품들(8/10)
동경 표류일기는 극화를 창시한 타츠미 요시히로의 삶과 그가 그린 작품 몇 가지를 선별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뒤섞은 작품이다. 요시히로의 삶을 단계별로 설명하며 그 사이에 그의 작품을 넣어 보기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극화"라는 것은 당시 주를 이룬 아동을 위한 매체, 만화와 달리 청년부터의 독자를 위한 것이었다. 현실적인 스토리와 그림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이 특유의 장르는 70~80년대 부흥했다가 쇠퇴하나, 이후에는 만화에 흡수되어 오늘날에도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요시히로의 작품들은 영화에 다음의 순서대로 등장한다.
<지옥><내 사랑 몽키><남자 한 발><안에 있어요><굿바이>
각 작품마다 설정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동시에 서럽다. 화려하기보단 투박하고, 솔직한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에 끝까지 감상하고 나면 가슴 한편이 아린 그런 감정이 든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사회의 끝으로 내몰리고, 저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는 어딘가 뒤틀린 결과물을 낳는다. 클라이맥스까지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들이 어딘가로 추락할 때 비통하면서도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마치 곪은 상처를 짜내어 터뜨리는 듯하다.
<요시히로 타츠미의 삶>
요시히로 타츠미는 어려서부터 만화의 세계에 빠져 거장 데츠카 오사무를 동경해서, 가정 형편을 위해서 만화를 그렸다. 그리다 보니 더욱 만화에 빠져들었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진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던 그에게는 현실적인 묘사가 중요했고, 그의 작품이 폭력 만화로 분류되는 것에 불만족을 느낀다. 그렇게 일반 아동용 만화와 자신의 작품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요시히로는 데포르메가 적고 명암이 강한 특유의 화풍과 "극화"라는 이름을 통해 다른 만화와의 차별점을 둔다. 또, 도쿄에 상경해 극화 공방을 열어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극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그 여파를 이겨내고 경제 부흥기를 지나 성장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타츠미 요시히로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그 부유함이 전달되지 못했고, 그는 거기서 느낀 분노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다방을 전전하며 스토리를 짜던 그는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가 말하길 이야기를 만들기보단 원래 있는 사실적인 내용에 혼을 불어넣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희열이 있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극화 이야기는 오늘날 누구에게는 그저 구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제 장인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장인이라 함은 한 대상을 제외하고 그 외 모든 것을 포기한 그런 외고수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것이 알려지는 요즘, 자칫하단 모든 이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필자는 우리가 효율과 개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정보망으로 인해 어디 하나에 집중할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동시에 개인의 특성이 중요시 여겨지고 존중받는다. 물론 그것이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만한 내용을 담는 것이 이전만큼 쉽지는 않으리라. 그렇기에 과거 멸종되었던 작품들은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마치 옛 생물들이 진화하여 오늘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화석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듯 과거의 정신을 담은 작품들도 이전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개별 작품 감상>
영화 속 작품들에 대한 감상은 간략히 아래에 적어보겠다.
<지옥>
주인공은 군대 보도국 소속 병사였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그는 절망한다. 그 속에서 그는 한 효자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다 벽에 그림자로 함께 각인된 채 세상에서 사라진 현장을 발견하고 이를 촬영한다.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신문사에 이 사진을 팔아넘겨 가족을 부양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비극을 양분 삼아 살아간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나, 히로시마의 참혹함을 알린다는 명분과 사진의 유명세에 내심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던 중, 그에게 한 인물이 접근한다.
알고 보니 그는 살아있을 리가 없던 효자였다. 그는 주인공이 찍은 사진은 목을 조르는 살인 현장이었고, 그림자로 증발한 건 자신이 아닌 살인을 부탁했던 친구였다고 실토한다. 효자는 주인공에게 비밀을 유지해주는 대신 돈을 달라고 협박한다. 히로시마의 참혹함을 알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켜 주인공은 은밀하게 그의 얼굴을 짓이겨 살인한다. 그러나 이미 효자는 신문사에도 방문에 협박을 했고, 주인공은 아무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셈이 되어 죄책감 속에 살아가게 된다.
히로시마의 참혹한 지옥은 엽기적인 일에 휘말린 주인공의 마음으로, 즉 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전쟁 속에서 벌어진 혼란과 고통이 전생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일본인들의 마음속에서 이어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명분이 있었다지만 결국 주인공은 살인자다. 작가의 의도와 같은지는 모르겠고 오늘날 행실을 봐선 아닌 것 같다만 과거의 일본인들 중에선 자신들이 무지하게 저지른 전범 행위들을 마음속에 품고 지옥도를 걸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
<내 사랑 몽키>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공장 내 소음과 수많은 인파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그러한 그는 사람의 유사품인 애완 원숭이, 여자의 그림, 레코드 등에서 위안을 얻는다. 원숭이와 있을 때, 사람임을 느끼는 그는 일상 속에서 일부 동물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만원 전철과 여유롭게 적재돼 이동하는 소들, 명견의 가격의 1/10 정도의 산재보험 등이 그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우연히 공장에 나가지 않게 된 날,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 앞에서 한 여자와 가까워진다. 곧 그는 짐승과 종이 한 장 차이인 자신의 반복적인 삶에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떄려 부수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려 하나, 팔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장애인이 된다. 그는 반 강제적으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실직자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렇게 애완 원숭이 몽키를 더욱 기르지 못하게 되자 그는 이전의 원숭이 우리에 몽키를 풀어주지만, 다른 원숭이들은 몽키를 구타해 죽여버린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귀가하던 주인공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군중들을 보고 겁을 먹으며 도망친다.
군중 속에서 어울리지 못해 고독을 느끼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인물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동시에 사회나 대중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그들에게 느끼는 막연한 공포감 또한 섬뜩해 공감이 가면서도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남자 한 방>
주인공은 은퇴하기 직전의 과장이다. 그는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회사에서는 이미 쓸모가 없어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는 비자금으로 모아둔 30만 엔을 은퇴 전에 탕진하고 즐기려고 한다. 주인공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퇴직금만을 계산하고 있는 가족을 보고 환멸을 느낀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에 전쟁 때 죽은 전우들과 전시된 대포를 보고 과거 자신의 남성성을 떠올린다.(스토리의 일부라지만 역시 야스쿠니 신사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는 늘 자신을 무시하던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거하게 바람을 한 번 피우겠다는 다짐을 한다.
본격적으로 바람을 피우고자 하나, 주인공은 그저 육체적 관계로는 진정한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여성상에 가까운 사람과 바람을 피우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소개소도 방문해보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는 평소 회사에서 흠모하던 비서가 연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뜻대로 하룻밤을 함께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발기하지 못해 비참함을 맛본다. 그날 밤, 야스쿠니에서 자결하려고 하나, 악처에게 돈이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악착같이 버티기로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포 위에 올라가 노상방뇨를 하며 쓸모없는 볼거리가 되어버린 대포와 자신의 처지를 겹쳐 본다.
정서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웠으나, 가정과 사회에서 쓸모 없어진 인물의 비참함을 잘 나타냈다. 특히 전쟁의 부산물인 대포와 자신을 겹쳐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발기부전인 주인공이 사정 대신할 수 있는 행위는 결국 방뇨밖에 없었기에 대포에 오줌을 싸는 장면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물을 이렇게 초라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독특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안에 있어요>
주인공은 어린이를 위한 만화를 그리는 인기 없는 만화가다. 복통을 앓고 화장실 단골이 된 그는 설상가상으로 잡지사로부터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귀가하는 길, 그는 다시 구역질이 나 공중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는 도중, 벽의 외설스런 낙서를 발견하고 더 심한 구역질을 한다.
며칠 뒤 잡지사에 마지막 화를 투고하고 돌아가는 길, 그는 그 낙서를 보고 싶어 변소에 되돌아간다. 이전의 낙서는 지워지고 이미 새로운 외설스런 그림이 그곳을 차지했다. 어린이는 물론, 잡지사로부터 내몰린 주인공은 더 이상 창작에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인간의 배설 욕구를 해결하는 변소에서 외설스런 그림을 마주한다. 비록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낙서지만 그의 창조자는 진심으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기에 그를 어느 정도 동경하기까지 한다. 이후 그는 어린이 잡지가 아닌 성인 잡지에 연재 제의를 받고 솟아오르는 창작욕에 휩싸인다. 그는 바로 변소에 달려가 깨끗한 벽에 낙서를 하지만, 알고 보니 여자 화장실에 잘못 들어가 치한으로 오해를 받고 체포된다.
요시히로는 어른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에게 투영시켰다. 또 주인공이 스스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을 배설 욕구 해소를 위한 장소이자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화장실로 선택한 점이 인상 깊다.
<굿바이>
주인공은 미군에게 몸을 팔아 연명하는 양공주이자 창녀이다. 주인공에겐 빌붙어 사는 아버지만이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 아버지를 주인공은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일본의 적인 미군에게 놀아나는 그녀를 멸시하고, 그녀 또한 자신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그들을 외면한다.
그녀와 결혼까지 약속한 미군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기분이 상한 주인공은 잔뜩 취해 말한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굿 바이야" 그리고 남자들은 전부 속이 새카만 호색한이라 말한다. 절망한 그녀는 술에 잔뜩 위해 곁에 있던 아버지를 유혹하고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렇게 그를 아버지에서 여태껏 자신의 몸을 탐하던 남자들과 똑같이 만들어버린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가족 따윈 필요 없다고 말하며 "굿 바이"를 외치며 또 하나의 작별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한없이 절망적인 이야기다. 몸을 팔아 연명하는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이런 극단적인 일밖에 없다는 것이 비참하고 끔찍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