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빼앗긴 삶에서 마주친 진실의 고통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긴 명작 올드보이. 이 영화가 대체 무엇에 대한 것이냐 묻는다면 누군가는 탈출, 복수, 혹은 다른 무언가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자유의 박탈"과 그에서 오는 무력감과 고통이라 생각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던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된다. 그렇게 그는 강제로 매일 같은 하루를 되풀이한다. 오대수는 감금당한 순간부터 자유를 포함한 모든 것을 뺴앗긴다. 감금 이외에도 아내의 살인범으로 몰려 사회에서의 자유를 박탈당하며, 열심히 꿈꾸고 계획하던 탈출도 강제적으로 해방되면서 자율적 탈출에 실패한다.
이우진은 오대수를 풀어준 뒤, 그에게 '더 넓은 감옥에서의 삶'은 어떤지 묻는다. 자유가 없는 삶이기에 그렇게 부른 것이리라. 오대수의 삶에는 이제 더 이상 우연도 자유도 없다. 모든 것이 이우진에 의해 철저하게 짜인 계획이다. 그에게 접근하는 미도, 조직 폭력배들과의 인연 모두 이우진의 계획이었으며 심지어 이우진의 등장마저 자발적이다. 그렇게 오대수의 계획은 이우진에 의해 단계별로 짓뭉게진다. 그 결과 오대수는 점점 더 약한 존재로, 이우진은 초인적인 존재로 느껴진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조차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뺴앗아간 이우진은 복수의 마침표를 찍으며 자결한다. 영화 중간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한 말이 있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이는 오대수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 알면서도 사랑했고, 복수했다. 어쨌든 욕망에 충실한 이우진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는 복선과 비유가 매우 친절하다. 물건을 보여주고, 어디에 사용되는지 아주 친절하게 보여준다. 모든 물건과 등장인물에는 각자 등장한 이유가 있다. 예시를 들자면 오대수가 감금에서 풀려난 후, 아파트를 벗어나는 장면이 있다. 15년 만에 마주한 햇빛이 눈이 부시고, 눈이 부시니 선글라스를 훔쳐서 쓴 이 장면은 마치 미래로 시간여행을 온 터미네이터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여자 선글라스를 쓴 오대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복수에 대한 큰 다짐을 했지만 어딘가 어색한 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또 오대수가 처음 경찰서에서 등장해 자랑하기도 한 딸을 위한 날개 선물은 자유의 상징으로도 보이는데, 그가 납치당하면서 내평겨쳐진 것 또한 굉장히 직설적이고 쉬운 비유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가 조금 복잡한 만큼 비유와 미장센이 단순해야 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시계의 7시 5분과 사건이 일어난 7월 5일을 나타내는 연출, 오대수의 과거를 수대오로 표현한 장면, 자 청룡과 웃음&울음 등 디테일한 요소들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또 펜트하우스의 비밀번호를 계속 틀리자 이우진과 조력자가 같이 타서 데려가는 장면에서 어설픈 오대수의 모습이 드러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 이우진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며 모든 실마리가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가 와이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벨트를 걸어 잠그는 장면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던 점, 두 인물이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본다(= 이우진과 오대수가 복수심으로 서로 같은 괴물이 되었다)는 세세한 디테일이 좋았다.
오대수의 마지막은 정말 처절하게 초라하다. 사죄를 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원수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죽이지도, 죽일 수도 없게 만든 뒤 퇴장한다. 자살도 오대수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하는 동시에, 리모컨에 대한 거짓말은 그가 가장 잊고자 했던 기억으로 회귀시킨다.
결국 오대수는 혀와 함께 자신의 기억도 잘라내고 헛도는 테이프처럼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고 살아가기로 한다. 미도가 눈 속에 파묻혔던 그에게 "누구랑 있었어?"라고 묻는 것은 중의적으로도 들리는데, 최면술사와 오대수 혹은 몬스터(현실을 자각하는 오대수)와 망각의 오대수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나타나는 눈 속의 발자국들은 최면술사의 것이기도 한 동시에 비밀을 아는 몬스터 오대수의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웃는 그가 과연 기억을 잊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영화 내내 슬픈 장면에서 그는 웃으려 하니까.
22-06-11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다 마무리한다. 영화를 다시 본지 벌써 2주인데 이제야 글을 올린다. 어떡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아도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