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정표가 새겨진 곳
고향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오묘하다. 단순히 태어난 곳만을 의미할까? 아니면 부모님이 계신 곳, 혹은 내가 자라난 장소일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품고 있기에, 그 의미는 저마다의 삶과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고향을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그리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내게 고향은 어디일까?
어린 시절 13년간 머물렀던 도시, 혹은 13살부터 3년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시골, 그것도 아니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20년 넘게 청춘을 바쳤던 도시?
아내와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았던 곳이 오히려 고향보다 더 고향처럼 느껴진다.
아내 역시 시골에서 자랐지만, 나와 비슷하게 한 곳에 길게 정착해 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내게는 직장 생활을 하며 처음 발령받았던 이 도시가 가장 길게 정착해본 곳이다.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아 기르기 시작했으니,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바로 이 도시에서 펼쳐졌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을 들었던 곳도 이곳이다.
물론 장례식은 고향에서 이복형제들이 모여 진행되었고, 당시에는 참 우애가 좋았다.
첫 명절에 다시 한번 모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이곳에서의 삶 속에 남겨져 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싶었다.
간절히 이곳에 머물고 싶었으나, 회사 정책상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서울로 발령받았다.
그럼에도 가끔씩 고향처럼 정겹던 이 도시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20년 넘게 생활하며 총각 때부터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으니, 어쩌면 이복형제들보다 나를 더 깊이 이해해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거다.
서울에서 10여 년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의 의도대로 되지 않던 한 가지 일, 어쩌면 배신감과 함께 자존심이 상해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다시 찾은 도시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과 동네 풍경도 변했고, 자주 가던 식당들이 남아있을 때면 반가웠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문을 닫았다.
함께 성장했던 동료들도 많이 떠나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인생 후반전의 정착을 위한 곳으로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곳이 아내에게도 고향 같은 느낌이라고는 하지만, 아내는 현실적인 면을 고려했다.
직장을 다녀도 금전적인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있고, 지금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곳을 다시 떠나기로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역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2027년에는 서울에서 살게 될 것이기에 그전까지 살 전셋집을 구할 예정이다.
사실 나는 반대도 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도 서울에서 지내려 할 테니, 나 또한 동의 하기로 했다.
다음 달까지 어디에서 살지, 방을 구할 지역을 정할 생각이다.
나는 이곳에 조금 더 머물다 내년에 합류할 예정이지만, 아내를 위해 집을 구하고 나의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것도 아내와 함께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마음 한편으로는 주말 부부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아무튼, 내 삶의 마무리는 이곳에서 하고 싶다.
어쩌면 익숙한 이곳이 나에게는 진짜 고향처럼 푸근하다.
비록 부모님과의 기억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없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들을 모두 경험하게 해 준 이곳이 바로 나의 고향인 것 같다.
고향에서 정착하고 싶은, 어쩌면 회귀하고 싶은 본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분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어디에 정착하고 싶으신가요? 혹시 이미 원하는 곳에 정착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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