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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부꾸미 May 06. 2022

회사가 원하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나

그 접점을 찾아서

어른이 되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나에 대한 주변의 역할 기대이다. 이전까지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들으며 착하게 지내기만 하면 되었겠지만, 어른이 되는 순간 내게 요구되는 것이 많아진다. 특히 사회인이 되어 조직생활을 하게 되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꿈이 직장인이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과 기대를 듬뿍 받고, 학창 시절에도 비교적 모범생으로 지냈던 나로서는 사회초년생 때의 조직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에는 모두에게 인정과 예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필요 이상의 감정노동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던  일단 인간관계 자체가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회사 내 인간관계라는 벽을 넘지 않은 이상, 모든 것은 철저히 기브 앤 테이브로 이루어졌다. 소위 프로답지 못하게 자발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업무적인 마찰이 생기면 얄짤없이 바로 정색하는 얼굴을 마주할  있었다. 그리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업무 연관성이 있을 때는 웃으며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업무관계가 끝나면 더 이상 사적으로 연락하는 법은 없다. 그것이 회사 내의 인간관계였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가 신입사원 때에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과장님과 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에게 정색을 하시다니 나는  분과 친한 것인가 아닌 것인가.' 하는 순진한 생각을 신입 사원답게 했었더란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자체만으로는 인정받을  없다는 사실도 더 이상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했다. 학생일 때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직장인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고, 당연하게도 월급을 받는 만큼 나의 몫을 해내어야만 했다. 또 학생일 때는 노력한 것만큼을 실제 성과로 연결시키기 어렵지 않았지만, 회사생활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노력 외에도, 센스나 소위 일머리, 혹은 친분 등 노력한 것만큼을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바라는 인재상은 어떤 것일까. 업무능력이 탁월한 것은 당연하고, 각박한 회사 내의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변에 실질적이든 정서적이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애사심이 뛰어나서 자발적인 동기부여에 의해 알아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동기부여의 촉발 요소가 승진이든, 성과급이든, 자아실현이든, 사회적 욕구의 실현이든 회사 내에서 동기부여 요인을 찾을  있는 사람들. 사회초년생일 때의 나는 (요새는 아닐  있지만) 많은 여자 신입사원들이 그러하듯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동기부여 부가적인 일들을 많이 했던  같다.


그렇다면 어느덧 과장급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회사에서 사랑받고 싶지 않고, 그와 관련한 사회적 욕구도 충족시키고 싶지 않으며, 승진을 하거나 성과급을  받고 싶지도 않다.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을 . 그리고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나는 회사로만은 온전한 자아실현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부분은 우리 회사가 직원들이 자아실현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내가 이직을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조직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자아실현을   없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바라는 나는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도,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도 딱히 아니었다. 이렇듯 충족되지 못한 나의 사회적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부단히도 오래 했다.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고, 대신 '행복감을 느끼는 '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보았다. 사회적 욕구의 실현은 지금의 회사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 밖의 생활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에 생각이 다다르자 오히려 회사 생활도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있게 되었다. 회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지만 나의 자아와 정체성은 사 안에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오히려 굳건하게 나를 지켜낼  있었다. 이것은 회사 밖의 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나에게 해줄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냉정하게 따져서 내가 회사에서 받아낼  있는 것만큼회사에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내고, 회사에서 해줄  없는 부분은 회사 밖에서 채울  있도록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가지만이지도 않을 것이다. 재테크, 가정, 다양한 취미활동, 학업  저마다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자아를 충만하게 채울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회사생활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과 업무는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고 자부할  있다. 단지 그것이 업무시간 한정되는 것뿐이다. 물론, 그러한 점에서 회사에서 바라는 인재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가 원하는 내가 되지 않기로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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