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부꾸미 Mar 27. 2022

검정이 무거워지는 계절

봄이 오는 속도

전날만 해도 비가 오고 흐리더니 하루 만에 갑자기 봄이 찾아왔다. 어제만 해도 비도 오고 추워서 언제 봄이 오나 했는데, 어제 왔던 비가 봄을 맞이하기 위한 봄비였나보다. 봄비를 잔뜩 머금고 하루 만에 푸르름을 가득 담은 새잎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한층 자라난 듯하였다. 이렇듯 봄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는 걸까.



예기치 못한 변화에 아직 채비를 마치지 못한 사람들은 날씨에 들뜬 옷차림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완연한 봄 날씨가 무색한 짙은 겨울 옷차림. 그 어색한 조화가 사람들의 급작스러운 마음을 짐작케 하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날과 다르게 맑은 것 같아 아침부터 전날 입었던 검은색 겉옷을 대충 들쳐 입고 나왔다가 나의 차림새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날씨에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으로 갑자기 고급 레스토랑에 가게 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검은색 외투는 겨우내 추위로부터 도피하고 싶던 나의 마음속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왜인지 추운 야외에 있더라도 검은색 옷을 입고 있으면 그것으로부터  몸을 숨길  있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검은색 뒤에 몸을 감추면 추위도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것처럼. 그래서 한겨울 동안 껴입고 있어야 위안이 되던 필수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서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 온기를 느끼며 한시바삐 벗어던지고 싶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겨우내 움츠러들어있던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던 검정색 겉옷이 내리쬐는 햇살과 대조되어 그때는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나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방인 처지라는 것. 그렇지만 어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날씨에 어리둥절한 마음도 잠시뿐, 내일만 돼도 다들 이 반짝이는 계절에 맞는 산뜻한 차림새가 될 것이다. 짙은색 옷차림과 봄의 부자연스러운 공존은 오늘로 끝이 날 테지. 나 역시 여느 상춘객들처럼 어떤 차림새와 마음가짐으로 봄을 맞이할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작가의 이전글 또다시 손이 가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