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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15. 2021

빵과 춤

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11

빵은 언제부터 구우셨어요?


글쎄요. 언제부터 일까요.

어릴 때는 제과점이나 마트에서 사지 않아도 내 손으로 과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중학생 즈음인가 생크림으로 만드는 ‘시오코나 스콘’이 유행해서 커다란 오븐 팬 가득 스콘을 구워 미술학원에 가져가기도 했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는 따뜻한 물에 섞어서 사용해야 하는 드라이 이스트밖에 없었는데, 물에 타서 써야 하는 것을 모르고 그냥 밀가루 반죽에 넣어서 부풀지도 않고 이스트 알갱이가 알알이 보이는 이상한 반죽을 만들기도 했다. 하다못해 이스트 봉지의 뒷면만 읽어봐도 되었을 텐데, 왜 반죽이 빵이 되지 않는지 혼자서 몇 번이고 실험하다가 겨우 이스트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책에 적힌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왜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어째서인지 빵에만 그렇게 집착을 해댔다. 쫄깃한 빵을 만든다고 밤에 싱크대에 쾅쾅 반죽을 내리치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질척하고 납작한 덩어리를 만드느라 밀가루를 5킬로는 버리고, 여름에 오븐을 돌리느라 집이 너무 더워져서 베이킹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음식을 버리면 안 되니 실패작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다 먹어치워야 했고.


글로 적힌 레시피보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들을 보고 하는 것이 성공률이 높다는 것과, 적어도 서너 개의 영상을 보고 각각의 레시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다. 빵 비스무리한 어떤 것들을 구워낸지 2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봉지에 적힌 밀가루의 용도뿐만 아니라 밀 품종에 따라 쓰임이나 제빵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 가루마다의 수분량과 특징, 그날의 날씨, 빵을 굽는 장소에 따라 레시피는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 그날, 그곳에서 맛있는 빵을 굽기 위해서 레시피를 조정하려면 모든 과정들이 어떠한 작용들을 일으키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온 신경을 쏟아 반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


빵은 수 천 년 전의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식부터 , 수천 년 동안 사람들 손에서 만들어지며 켜켜이 쌓인 방대한 법칙을 토대로 발전한 정교한 방식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 슬쩍 내 가기 적당한 빵을 고르고 원하는 맛을 만드는 데까지, 내게는 이만큼의 공부가 필요했다.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때에 나는 춤추는 것에 빠져 있었다. 특정한 동작 없이 몸이 가는 대로 이끌려서 움직이는 워크숍들에 자주 다녔다. 신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움직임 세션에도 몇 번 갔다.


가서 몸이 원하는 만큼, 근육이 늘어나고 버티는 만큼 정신없이 춤추고 나면 가끔 누군가 와서 묻고는 했다.


“당신은 댄서인가요?”


글쎄요. 내가 댄서일까요?

말 자체는 ‘춤을 추는 사람’이라는 뜻일 뿐인데, 댄서, 제빵사, 미술가, 음악가 같은 낱말들은 늘 나를 긴장시킨다. 내가 남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전문가’일까?


댄서가, 제빵사가, 미술가가, 음악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자격증을 따면 되나? 전문학교에 들어가서 수료증을 받으면 되나? 한 10년 정도 그 일에만 매달리면 되나?


까르라는 친구를 인터뷰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까르는 노래하고 커리를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까르는 돈을 ‘엄지손가락이라고 비유했다. 나머지  손가락에 무엇이 꼽힐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건강일 수도, 가족이나 , 꿈같은 것일 수도. 엄지 손가락은 없어서는  지만 적당한 크기로  자리에 있을 때가 편한 거지, 만약 엄지손가락이 너무나 

커져버려서 맥주잔을 집을 때나 머리를 감을 때 걸리적 거린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까르에게 돈이 ‘적당한’ 엄지손가락으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어 보였는데 워크숍을 여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까르는 종종 탄두르를 만드는 워크숍을 연다. 공인된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감동을 줄 수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일이니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거듭하는 일은 멋지지만 ‘충분히 전문가로 보이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잠시 미뤄두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누군가 내게 당신이 댄서냐고, 제빵사냐고, 미술가냐고, 음악가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춤을 춰요. 기분이 우울할 때는 빵을 굽고, 날씨가 좋은 날에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밤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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