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 씨,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면서요

차분히 관조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 삶

by 비터스윗

아버지는 지난 3월에 돌아가셨다. 평소 말이 없으시고 근엄한 편이셨던 아버지. 그런 분이 우리 가족에게만 통하는 위트를 가끔 날리셨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특별한 추억이라면 함께 TV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주말의 명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날은 웬일로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 TV를 보시면서 뭐라고 들릴락 말락 하게 말하신다.

"뭐라고요, 아빠?"
"자꾸자꾸 울어야겠다고."
"네?"
"눈물이 진주라잖니. '눈물이 진주라면 자꾸자꾸 울겠어요' 이렇게 노래해야지."


이미자 씨의 "눈물이 진주라면"을 들으면서 노래에는 집중 안 하시고 그 가사가 재밌다 생각하셨는지, 혼자 상상을 하시며 웃으신 거였다.

훗날 기자가 안 됐으면 코미디 작가를 하고 싶었다고 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그렇게 코미디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셨을까?

아버지는 드라마보다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꼭 챙겨보셨고 덩달아 나도 아버지 슬하에서 코미디를 보며 자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근대 코미디의 아버지 찰리 채플린. 살면서 위로와 용기를 구할 때 가끔 되뇌어보는 격언.

우리의 삶. 눈을 뜨면 카메라 슛이 들어가고 심지어 클로즈업해서 보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는 언제 이 비극에서 도망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삶은 언제나 비극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비극이라고 하기엔 좀 지나친가. 갑자기 맥베스 부인을 떠올릴까 봐 염려된다. 말하자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상이라고 해두자)

언제 하루라도 '오늘은 완벽했어'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래도 잘 버텼어, 잘 해냈어, 내일도 힘내자. 이 정도만 돼도 성공한 거다. 매일같이 겪는 실수, 난처함, 패배감, 좌절, 분노, 슬픔... 괴롭다. 도대체 이 고통의 터널은 언제 끝나는가.

반면 타인의 삶은 희극으로 보인다. 그는 언제 봐도 여유 있어 보이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실패를 맞닥뜨려도 멋지게 극복한다.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일 것이 분명하다.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남의 인생을 멀리서 볼 수밖에 없다. 거리를 두고 게다가 시간차로, 말하자면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성취와 성과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이다. 어쩌면 잘 포장됐을 수도 있는 아주 보기 좋은 수확물.

과거에 어떻게 농사를 망쳤었는지,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잘 익은 사과, 잘 익은 옥수수만 보인다. 세상 모든 운은 그 사람 편이다.




한차례 우리 가족에게 태풍이 휩쓸고 간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어쨌든 잘 버텼고 그 후 우리의 꿈은 지연되긴 했어도 궤도에 다시 올랐고 아이들은 둘 다 학업을 잘 마쳤다. 아이들이 불안해할까 봐 같이 시간을 보내며 웃겨주려고 무척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고통을 유머와 위트로 순화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을까. 여하튼 되지도 않는 멘트로 아이들을 안심시키면서 최대한 밝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밖으로는 굳이 억지로 포장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고 속이 다 들여다 보이게 '나 이렇게 살아요, 뭐가 어때서요!" 이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조차도 내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버금가는 비극의 한 막을 쓰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자매들도 잘 몰랐다. 희극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KBS '인간극장' 주인공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나는 초인도 아니었고 그 당시 나의 정신력이 위인들만큼 강하지도 않았다.

내가 별다르고 대단한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다. 모른다, 남은. 남이니까 모른다.


채플린 씨 말이 맞다. 인간의 삶에는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자신의 삶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좀 더 가벼워지고 어쩌면 웃음이 나오기도 할 거라고 말한다. 그는 그의 영화에서 가장 밑바닥 사람들, 노동자, 부랑자, 고아들의 삶을 코미디로 구현하지 않았는가. 가장 비극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페이소스를 만들어냈다.



비극적인 상황도 반전시키고 사람들의 갈등과 긴장을 풀어주는 힘을 지닌 유머와 위트.

다른 글에서는 책임감 있는 배우자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는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유머 있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가정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아마 글을 쓸 때마다 조건이 하나씩 더 늘어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각설하고, 우리가 유머와 위트를 를 갖춰야 하는 이유를 몇 개 간추려 볼까 한다.

1.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웃을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2. 부부, 자녀,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유머와 위트, 아니면 시중에 떠도는 아재개그라도 던지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면 막혔던 대화도 술술 풀릴 것이다.

3.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한발 떨어져서 인생을 바라보자. 유머 덕분에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해피엔딩이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가장 감동적이지 않나.

아니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해피엔딩이다. 공연히 복선을 찾고, 반전을 찾고, 옥에 티를 찾고 그러지 않으면 된다.

내가 주연배우로 나오는 영화를 관람석에 앉아서 느긋하게 보자. 웃어줄 준비를 확실히 하고 말이다.

웃든 안 웃든 관람료는 똑같은데, 좀 즐기고 나가자. 찡그리면 주름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