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려 애쓰지 말고 지금을 누리세요
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가 맥주를 거푸 몇 잔 마시더니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 벤츠 살 거예요. 내 꿈이거든요. 5년 내에 꼭 살 거예요."
"벤츠요? 그러세요. 열심히 일해서 사면 좋죠. 그런데 꼭 벤츠여야 돼요?"
"네. 꼭 벤츠를 살 거예요."
나도 벤츠 타고 싶다, 아니 뭐든 좋은 차 타고 싶다. 싫을 사람이 어딨나.
벤츠, 실은 가끔 탄다. 친구가 운전하는 벤츠. 난 더 좋다. 운전을 안 해도 되니 말이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그렇게 평생에 걸쳐 꼭 해야 할 일이라는 듯 힘주어 말하길래 좀 놀랐다.
서초동에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살 거예요
수입차 ㅇㅇ을 살 거예요
사위는 꼭 ㅇ사로 맞을 거예요
아들을 의사로 만들어서 평생 부양받으며 살 거예요
이런 생각,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공공연히 그야말로 공표하듯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난감하지 않은가. 그것이 당신의 평생소원, 일생의 가장 큰 꿈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차라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거나, 책을 출간하겠다거나, 마라톤 완주를 한다거나, 서점을 차리겠다던가 이런 소원을 말했으면 덜 난감했을 텐데. 오히려 부러웠을 텐데.
수직으로 수평으로 계속 뻗어나가려고만 한다.
계층의 사다리.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아니 여기까지 너희(자녀)들을 끌고 올라왔으니 너희는 나를 밟고 올라서서 더 올라가야 한다, 내려다보는 것은 죄악이다, 위만 보고 올라가야 한다.
영토의 확장.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차 배기량을 늘리고, 땅도 사고 해외 부동산도 사고, VIP 인맥도 넓혀야 하고.
나도 참 오지랖이다. 남의 꿈까지 왈가왈부할 게 있나. 사실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브런치 북의 제목이 무엇인가.
'평온한 삶을 위한 쓸모 있는 참견들' 아닌가. 쓸모 있기를 바라며 하는 참견이다.
개나 소나 다 탄다, 개나 소나 다 ㅇㅇ한다고 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차? 국민 차? 그런 차는 쳐다도 안 본다. 간혹 개도 타고 소도 타긴 하지만 수입차 ㅇㅇ를 타는 사람들은 그래도 소수다. 서로 개 보듯 소 보듯 해도 충분한 구매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소수에 끼고 싶은 거다. 소수가 누리는 우월감, 자기만족이다.
자신보다 상위계층의 문화, 취향 등을 추종하며 상대적으로 그보다 못한 이들을 무시하는 현상을 '스노비즘 snobism'(속물주의)이라고 한다. 유래가 특이하다. 18세기 영국에서 통용된 단어 '스놉 snob'(속물)에서 유래됐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상류층을 따라 하거나 동경하면서 고상한 척하며 뽐내는 태도나 취향을 스노비즘으로 정의한다.
말하자면 결핍에서 시작된 것이다. 귀족처럼 계급으로 세습된 부나 명예를 누릴 수 없음에도, 스스로 부를 축적한 일부 부르주아들이 주류사회에서는 인정받으면서 하층민들에게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
21세기 대한민국의 스노비즘은 특정 지역의 부동산 소유는 기본이며 더불어 온갖 동산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다니는 양상을 띤다.
슈퍼카, 명품, 프리미엄 여행, 오마카세, 미슐랭, 백화점 VVVVIP, 그 외 개나 소나 절대로 할 수 없는 것들.
영원한 것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다. 나의 후손들도 영원한가. 자녀들이 있어도 후손을 보기 힘든 세상이다. 누구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유난을 떠는가. 누구에게 자신을 뽐내기 위해 유난을 떠는가.
난데없는 '수저계급론'으로 대한민국 대다수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는 지금, 굳이.
수저에 따라 학업, 취업, 결혼, 자녀교육 등 모든 게 결정된다는 우울한 결정론. 결국 대한민국의 혼인율, 출산율 마저 떨어지는 암울한 현실이다.
그냥 누릴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하면 어떨까. '마음껏 즐기면서 쓸 수 있을' 정도의 비용, 즉 유지에 드는 비용까지 감안하며 품위 있고 여유롭게 소유하는 것 말이다.
누리지도 못하면서 남들 눈을 의식하며 '나는 특권을 누리는 소수'임을 인정받기 위해 소유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넘쳐나는 부富를 어떻게든 소비하고 싶다면 공동체로 눈을 돌려 관심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를 하는 건 어떨까.
십시일반 적은 금액으로도 많은 이들이 함께 누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함께 누린다는 것, 우리 모두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명제 아닌가.
ㅇㅇ도 아니고 새 차도 아닌, 10년 넘게 곁에 있는 내 차에 올라탄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새겨진 문구.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우리 여정의 끝이 생각보다 멀리 있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안분지족 安分知足. 만족하며 편안히 누리는 삶.
그렇게만 살고 싶다. 무리 없이 물 흐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