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디지털 세상, 기죽지 않고 살려면

모르면 배워야 해요, 아주 늦기 전에

by 비터스윗

어딘가에 서류를 접수할 일이 생겼다. 이메일로만 접수를 받는단다. 오케이.

응시서류를 다운로드하고 이렇게 쓰고 입력하고. 그런데... 서명? 서명을 어떻게?

다 입력하고 인쇄해서 서명을 하고 스캔을 해서 다시 이메일로 보내야 하는 건가.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딸에게 S.O.S. 엄마가 이거를 어쩌고 저쩌고 물어보니, 자기한테 보내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함 해보자. 이거 저거 해보니 어떻게 성공.

아휴... 이게 뭐라고... 대단한 거도 아니구먼.


화나고 서러우면 나이 든 거 맞아요


안 해본 걸 하려니 덜컥 겁이 나고 못하니까 이렇게 괜히 서럽다.

사람 손을 거치는 것이 갈수록 비용도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해서인지 신청, 통보, 알림 등이 점점 인터넷, 모바일로만 가능해진다.

나이 든 사람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배우지도 않았고.


요즘은 '늙었다'라고 하면 다들 언짢아한다. '나이 들었다'라고 해야 한다.

난 늙었다고 하기엔 젊었고 젊다고 하기엔 늙은 나이다. 그래도 할 줄 모른다고 자녀들에게 의존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알아서 끙끙거리며 배우는 성격이다.

IT전문가가 될 일은 없으니 그렇게 전문적인 분야가 아닌 웬만한 것, 신청하고, 납부하고, 송금하고, 주문하고, 예약하고... 이 정도는 한다.

최소한 문자가 오면 확인하고 답장까지 보낼 줄 아는 어르신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생활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사실 그 이상을 할 줄 알아야 진땀 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별로 복잡한 것이 아닌데도 갑자기 막히면 그때부터 당황한다.

키오스크 앞에서 햄버거 하나 주문하기 힘들어서 쩔쩔매는 어르신들은 얼마나 서럽겠는가.

요즘 말로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화나고 서러우면 늙은 거'다. 화를 내면 꼰대라고 하니 화는 안내지만 가끔 혼자 서러울 때는 있다.

내가 이거 하나 못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무능력을 느끼고 자책을 하며 심하면 우울감에 빠진다.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되는 중장년층


현관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벽면에 동대표를 뽑는다는 공고가 붙어있다. 아파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투표를 하란다.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배워보려고 하니 지정된 날짜에 인터넷으로 신청하라고 한다.

시내버스, 마을버스, 지하철 등은 교통카드로 이동하지만 요즘 시외버스나 공항버스는 미리 모바일로 예매를 해야 한다. 탑승할 때 QR 코드를 찍어야 한다. 이 정도는 미리 준비된 일정이라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어르신들이 택시 탈 일이 생기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콜택시보다 카ㅇ오 택시 플랫폼이 대중화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이용을 자주 해 본 이들은 미리 편하게 택시를 예약하고 정해진 장소에 나가서 타면 되지만, 큰길 나가서 빈택시를 잡으면 된다고 고집부리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정말 난감해진다.

간단히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가도 입구부터 키오스크가 손님을 맞는다. 다행히 뒤에 서 있던 젊은이가 도와주기도 한다. 동창들과 새로 오픈한 식당에 가니 테이블마다 태블릿 같은 게 설치돼 있다. 테이블 오더 시스템이란다. 직원도 이걸로, 물 한잔도 이걸로 호출하란다.

최근엔 프로야구 예매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이슈가 됐다. 온라인 예매를 하지 않고 직접 야구장에 가서 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낭패를 보는 것이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 바, 현재는 구단별로 자구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어르신들 및 디지털 취약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일정 수량은 현장판매를 한다고.


디지털 세상이란다. 많은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제공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과 어르신들은 계속해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단순히 한 두 번 불편한 것 아니냐고? 교통수단 이용이나 취미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소통도 힘들어지고 고립감을 느낀다. 게다가 실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인 은행 업무, 병원 예약 등 까지 불편하다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며 위축된다.

단순히 연령이나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초고령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 해요, 아주 늦기 전에


은퇴 후 부모님의 여생은 무척 단조로웠다. 30년 넘게 사시던 동네에서 남쪽으로 이사 오시면서 다니시던 교회도 안 나가시고, 동네 주민들과 친해지기보다는 한동안 사시던 곳을 왕래하셨다. 서울 도심까지 동창들을 만나러 행차하시기도 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어지고, 지출도 적지 않으니 뜸해지고 결국 늘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사시더니, 아버지는 올해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아직도 별반 다르지 않게 사신다.


아직껏 후회된다. 은퇴 후 좀 더 풍요로운 시간들을 보내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그러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문물도 배우시고 했어야 하는데... 몇 번 시도했으나 부모님 고집에 두 손 들고 나 몰라라 했다.

그나마 어머니는 뒤늦게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셔서 좋아하는 가수들 공연도 유튜브로 보시고 친구들과 사진도 주고받으며 나름대로 디지털 세상을 만끽하고 계시지만,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이 이메일 작성은 물론 파워포인트까지 하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아는 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새로운 기기를 접하고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어렵다.

특히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세대로, 주변에 친절히 알려줄 가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자식이 바쁘다고 볼멘소리 하는 건 듣기도 싫다. 스스로 터득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혼자 한 번 시도해 보지만 처음부터 뭘 설치하라고 하고 회원가입에 본인인증도 서너 번 받아야 한다.

최근엔 노인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주민센터 등에서 디지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생활에 꼭 필요한 온라인 서비스 사용법 등을 교육한다. 지자체와 민간단체 등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OTT 서비스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게 2016년이라고 한다.

남들은 '오징어 게임'이다 '폭싹 속았수다' 를 봤다고 떠들 때 속으로 '그거 볼 시간에 난 잠이나 더 자겠다'라고 생각하는 중장년 세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든 싫든 이미 아날로그 세상은 디지털 세상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변화를 막을 수 없다. 이미 그 변화의 물결과 함께 우리는 흘러가고 있다.

서럽다고 불편하다고 투덜대지 말고 늦기 전에 배워야 한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무인도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