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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카페

9화 마포대교.....

차량의 통행이 드문 새벽 3시.
가로등 불빛만이 다리 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연이는 검푸르게 출렁이는 한강을 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저 강물 속으로 들어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녀는 난간을 붙잡은 채 조용히 울먹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천천히 난간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지연과 검게 일렁이는 강물만이 세상 전부였다.

“그래, 이제 너와 나만 아는 세상으로 가는 거야…”
지연은 두 눈을 꼭 감고 뛰어내리려는 순간,
주변이 갑자기 밝아지며 강한 빛이 그녀를 비추었다.

“경찰입니다! 아가씨, 난간을 꼭 잡고 계셔야 합니다!
놓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힘찬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뜬 지연은 아래에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경찰들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인형처럼 굳어버렸다.

“아가씨, 무슨 일 때문에 거기 계신 겁니까?
저희가 천천히 갈 테니 안심하세요. 겁먹지 마시고, 말씀대로 따라만 하시면 됩니다.”
경찰들은 매뉴얼대로 천천히 다가가며 지연을 안심시켰다.

그녀에게 닿을 듯 가까워진 순간—
지연의 발이 난간 밖으로 미끄러졌다.
짧은 비명과 함께 두 팔로 겨우 난간을 붙잡은 그녀.

그때, 한 경사가 재빠르게 팔을 뻗어 그녀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아가씨, 진정하세요! 제가 안전하게 구해드리겠습니다.
발을 움직이시면 안 돼요. 무게를 실지 말아야 제가 잡을 수 있습니다!”

경찰들의 도움으로 로프가 연결되고, 지연은 마침내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한강순찰대 보트도 강 위에서 대기 중이었다.

지연은 한 경사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의 기억 속에 오래 묻혀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다섯 살이던 지연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오빠가 “잠깐 숨어 있어. 내가 찾으러 갈게!”라고 했지만,
겁에 질린 지연은 어두운 골목길을 무작정 달렸다.

신발은 벗겨지고, 양말만 남은 발바닥이 까져 피가 나기 시작했다.
모래와 흙이 달라붙은 발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른 채, 멀리 붉은 십자가 불빛이 보였다.

‘저기… 저 불빛만이 희망이야.’

힘겹게 발을 끌며 다가간 곳은 천사보육원이었다.
간판 글씨를 읽을 줄 몰랐지만, 문 앞에 다다른 순간 긴장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인기척에 밖으로 나온 루시아 수녀님이 아이를 발견했다.
“어머나! 여기 어린아이가 쓰러져 있어요! 마리아 수녀님, 어서 나와보세요!”

안에서 뛰어나온 수녀들과 아이들 사이에, 지연은 그렇게 새로운 삶의 문턱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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