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나무 '송욱이' 이야기
나에겐 '송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나무가 있다.
수채화 고무나무라는 예쁜 품종의 이 녀석은 박사 학위를 마치고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운명처럼 만났다. 처음 배송되어 온 날을 잊지 못한다. 상자 안에서 화분은 나뒹굴고 있었고, 흙더미 속에서 녀석은 반쯤 탈출한 상태였다. 소중한 의미를 담아 맞이한 반려나무가 시작부터 상처투성이에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나타나자, 나는 한 시간 동안 투덜거릴 만큼 속상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쏟으며 속상해하는 건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새로운 삶의 궤적을 그리며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었다. 상처투성이로 도착한 나무가 꼭 꼬여버린 내 인생의 복선처럼 느껴져 눈물이 고일만큼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최근 아내도 오래 정들었던 아이폰 미니를 보내주고 새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처음으로 자신다운 일을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던 시기라 그녀에게도 그 폰은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액정에 깊은 흠집이 생겼다. 아내는 일주일 내내 우울해했다. 완벽하고 싶었던 시작에 생긴 흠결에 자신을 투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아내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생각해 보니 이 흠집도 마음에 든다며, 우리 삶이 언제 처음부터 완벽했던 적이 있었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다들 하나씩 하자가 있고, 그걸 서로 지탱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멋진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듣고 집안을 둘러보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내가 가족처럼 아끼는 존재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하나같이 결함이 있었다. 시작부터 다쳤던 송욱이는 자라면서도 비뚤 하게 컸고, 용인시 마스코트인 '조아용' 인형은 왠지 모르게 수염이 없이 매끈한 얼굴로 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며 당당히 하루를 보낸다. 송욱이 역시 15cm도 안 되던 작은 몸으로 상처를 딛고 새 가지를 냈고, 지난여름에는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며 자라났다.
박사 졸업 후 내 인생의 분기점마다 송욱이는 신기할 정도로 나와 함께 호흡했다. 녀석을 죽일 뻔한 위기가 세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삶도 극도의 혼란기였다.
첫 번째 위기는 2023년 봄, 가족과의 불화가 깊어지고 포닥(Post-doc)으로서 연구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때였다. 경제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며 커리어의 복잡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송욱이는 거짓말처럼 말라갔다.
두 번째 위기는 새로운 직장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며 '나를 갈아 넣어' 성과를 내던 시기였다. 겉으로는 성장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휴학을 고민할 만큼 지쳐있던 그때, 송욱이의 성장도 멈췄다. 알고 보니 화원 직원의 실수로 화분 아래 절반이 흙이 아닌 자갈로만 채워져 있었다. 뿌리가 뻗을 공간도, 물을 머금을 흙도 없이 비좁은 곳에서 버텨내던 녀석의 모습은 영락없이 나를 닮아있었다.
세 번째 위기는 현재의 직장으로 옮기며 커리어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했던 시기였다. 이사 문제와 가족 문제, 그리고 내가 걸어온 궤적과는 너무나 다른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해야 했던 불안함 속에서 나는 송욱이에게 물 한 모금 줄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송욱이는 이번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념 하나로 생존력을 키워온 나처럼, 녀석도 버티는 법을 본능적으로 익힌 듯했다.
송욱이의 첫 분갈이를 할 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녀석은 원래 곧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Y'자 수형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데 업체에서 한쪽 가지를 잘라내고 밑동까지 흙 속에 깊이 묻어 일자로 보이게끔 '포장'했던 것이다. 나는 흙 속에 숨겨진 잘린 가지를 세상 밖으로 꺼내어 다시 심어주었다.
그때부터 송욱이는 12시 방향이 아닌 2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자라기 시작했다. 아무리 햇빛 방향을 바꿔줘도 타고난 기울기는 어쩔 수 없었다. 상처를 숨기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마치 내 길이 정답인 양 번지르르하게 포장했던 내 과거가 겹쳐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옳다고 믿었던 가시밭길에선 말라가던 녀석이,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선택한 안정적인 길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나기 시작했다.
최근 나는 세 번째 분갈이를 해주며 처음으로 내 고집을 꺾었다. '나무는 스스로 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옆으로 크게 기우는 줄기를 지탱해 줄 지지대를 설치해 준 것이다. 꼼꼼히 지지대를 세워주자 비로소 수형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하자가 있고, 그 부족함을 서로 도와주고 기대며 극복하는 것이 삶 아닐까. 개천에서 홀로 용이 되어야만 성공인 것도 아니다. 부족하면 도움을 받아 용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용이 아닌 자유로운 뱀장어로 남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비뚤어진 모습도 결국 나의 일부다. 이제 나는 안정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송욱이를 그저 따뜻하게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기꺼이, 그에게 맞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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