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동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음악가 이야기 1. 'Wolfgang Amadeus Mozart'

by 가온Gaon

'Wolfgang Amadeus Mozart'

클래식 음악에 아무리 관심이 없다는 분들도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불멸의 베토벤, 마지막으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라는 4명의 이름은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Wolfgang Amadeus Mozart' 독일어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우리나라에서는 모차르트로 흔히 알려진 이 작곡가의 앞에는 항상 '신동'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모차르트의 뒤를 이어 음악의 계보를 이어간 뛰어난 작곡가들도 모두 모차르트를 음악의 천재 또는 신동으로 부르고 했습니다.


img.jpg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 의해 그려진 어린 모차르트의 초상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

그만큼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작곡가, 연주가의 자질이 뚜렷했으며 그의 집안 또한 음악가 집안이었지만 온 가족이 모차르트를 위해 자신들의 음악 인생을 헌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Johan Georg Leopold Mozart)'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Anna Maria Walburga Mozart)'의 아들이었습니다.


모차르트에게는 형제가 7남매가 있었는데 5명의 남매들이 어린 나이에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일하게 피아니스트였던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Walburga Ignatia Mozart), (흔히 '난넬'이라고 불림)'가 남아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미 4살 때부터 작곡을 하였으며 7살 때부터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카펠마이스터(현재의 악장이자 오케스트라 전체의 관리자)'이었던 아버지 레오폴트와 피아니스트였던 누나 난넬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img.jpg 연주 여행 중인 모차르트의 가족, 왼(레오폴트), 중(모차르트), 우(난넬)

'모차르트의 여행'

현시대에도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연주 또는 작품 활동을 위해 해외로 많이 나가서 여행을 하기도 하고 유학을 통해 음악을 배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또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7세부터 뛰어난 연주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여행을 다니며 유럽 여러 나라들의 음악을 접했습니다.


1763년부터 1766년까지 독일의 여러 도시와 파리, 런던 등지를 여행하며 많은 작곡가와의 교류가 있었으며 1764년에 떠난 런던으로 으 여행에서는 바흐의 막내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 Christian Bach)'을 만나 작곡과 지휘를 배우며 자신의 음악을 한층 더 높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서는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Martini)'에게 음악 이론을 배우며 오페라의 발상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양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럽 일주 여행은 어린 모차르트에게는 엄청난 부담감을 주어 어린 나이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른 음악가들은 어린 나이에 할 수 없는 경험을 모차르트에게 주었으며 모차르트를 '신동'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img.jpg 모차르트의 초상

'황금기였던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생활'

점점 신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던 모차르트는 다시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어린 17살의 나이에 신동의 이름을 벗어나 어엿한 궁정 음악가로 발탁되어 궁정에 상주하며 작곡과 연주를 하였지만 모차르트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성격은 궁정에서는 골칫거리였으며 결국 궁정과 모차르트의 불화로 1781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떠나 사망할 때까지 빈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빈에서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평생의 반려자인 콘스탄체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가족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어린 신동일 때의 모차르트를 기억한 많은 빈 사람들에 의해 모차르트는 처음 빈에 왔을 때부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을 받았으며 1781년에는 '무치오 클레멘티(Muzio Filippo Vincenzo Francesco Saverio Clementi)'라는 뛰어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배틀을 벌여 승리하면서 '빈 최고의 피아니스트'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러한 활동은 모차르트의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또한 빈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하이든(Josep Hydn)'을 만나게 되었으며 하이든은 24살 차이가 나는 어린 모찰트를 제자나 경쟁자가 아닌 뛰어난 음악가 친구로 대하였으며 모차르트의 아버지에게 모차르트는 아주 뛰어난 연주가라는 편지를 보내 찬사를 하기도 했으며 하이든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모차르트는 '하이든 4중주라는 6곡(k.387, k421, k428, k458, k464, k465)'를 작곡하여 하이든에게 헌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오토 얀(Otto Jahn)'이라는 독일의 문헌 학자는 모차르트의 전기를 쓴 거로 유명한데 오토 얀의 모차르트 전기에는 모차르트가 빈에서 1784년 28살의 나이에 14살의 어린 베토벤을 만났고 모차르트는 자신을 찾아온 베토벤이 자신의 곡을 즉흥으로 연주하고 편곡하는 것을 보며 뛰어난 음악성을 알아보고 어린 베토벤을 성심성의껏 지원해 주고 레슨비가 없을 때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교육을 시키고 자신의 수제자로 키워내다가 베토벤의 어머니가 사망하며 둘은 이별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토 얀의 저서 이기 때문에 부정확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츠부르크라는 작은 시골 도시에서 떠난 모차르트는 빈이라는 당대 최고의 예술 도시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자신을 지원할 후원자, 연주자, 작곡가 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황금기를 맞이해 오페라와 교향곡 작곡에 전념을 할 수 있었습니다.


Manuscript_of_the_last_page_of_Requiem.jpg 모차르트 레퀴엠의 마지막 페이지

'신동이자 천재의 죽음'

1791년 12월 5일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서 모차르트는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죽음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기록에 따르면 죽기 전 모차르트의 온몸에는 좁쌀만 한 반점과 동반한 고열이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죽음이 당시 유행했던 식중독과 기생충에 의한 죽음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인생에서 황금기였던 1780년대와 딜리 모차르트 1789년부터 모차르트는 연주 여행에서 큰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만하임 등의 연주 여행에서도 큰 성과를 받지 못하자 모차르트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고난을 겪었으며 이 당시 채무만이 늘어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791년이 되면서 모차르트는 헝가리와 네덜란드의 여러 귀족들에게 알려지며 엄청난 후원금을 받고 창작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체코 프라하에서의 연주에서부터 고열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1791년 9월 30일 자신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초연을 지휘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젊은 귀족 '프란츠 폰 발제크'의 의뢰로 작곡하기 시작한 '레퀴엠(진혼곡)'은 모차르트에게 빠른 시일 내에 작곡을 해달라는 의뢰로 스트레스를 안겨주어 모차르트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작곡에 전념하게 됩니다.


결국 11월 20일 모차르트는 고열과 좁쌀반점, 설사, 부종을 동반한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아내의 콘스탄틴의 간호에도 더욱 병세가 심해지며 1791년 12월 5일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모차르트는 마지막으로 작곡하던 레퀴엠이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게 되었고 미완성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요제프 레오폴트 아이블러(Joseph Leopold Eybler), 프란츠 쥐스마이어(Franz Suessmayer)'에게 넘어가며 완성되게 됩니다.


특히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하였으며 모차르트에게 직접적인 작곡 방향을 받아 작곡하였으며 곡이 완성된 후에 모차르트의 사인을 위조하여 의뢰인이었던 발제크 백작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글을 마치며'

어릴 때부터 음악에 큰 재능을 보이며 남들과 다른 여행을 다니고 선망과 명성을 얻은 모차르트, 남들은 그를 위대한 음악가와 축복받은 재능을 가졌다며 부러워했을 수 있지만 모차르트에게 신동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온 인생은 그에게 어떤 고민과 걱정을 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궁정의 뛰어난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존재, 자신을 위해 재산을 털어가며 여행을 시켜주는 부모님과 가족의 존재가 고마웠겠지만 그만큼 큰 부담을 모차르트 개인에게 주었을 것이고 자신의 진로가 이미 음악가로 확정된 상태에서 모차르트는 더욱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작곡하던 마지막 작품 레퀴엠이 자신의 마지막을 알릴거란 생각을 과연 그도 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의 인생이 크게 즐거웠을거 같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거 같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라는 뛰어난 음악가의 존재는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과 클래식 음악사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존재이며 앞으로 나올 음악가들에게 한 명의 스승이자 더 나아가 영웅처럼도 보이며 귀감이 될 것입니다.


뛰어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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