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음악가들의 아버지 '바흐'

음악가 이야기 2. ' Johann Sebastian Bach'

by 가온Gaon

'Johann Sebastian Bach'

초, 중, 고등학교의 교과서를 통틀어 모든 음악책에서 음악의 아버지로 소개되고 회자되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서있었던 인물이였으며 그의 음악은 바로크시대의 끝을 알림과 동시에 바로크 음악의 최절정을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 오케스트라의 성가대 지휘자였으며 오르간을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였고 동시에 작곡가이며 뛰어난 쳄발로(피아노의 원형 악기) 연주자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였습니다.

'음악가 집안의 막내아들'

바흐의 집안은 대대로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가 집안이었으며 바흐 집안사람들의 개신교회의 열렬한 신자이자 뛰어난 개신교회 음악가 였습니다.

바흐의 큰할아버지인 '하인리히 바흐(Heinrich Bach)'는 바로크 음악사에 길이 남을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였고 바흐의 집안이 있었던 튀링겐 지방에서 바흐 가문의 이름은 음악가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1685년에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 연주법을 배우고 큰아버지에게는 오르간을 배우면서 교회의 성가대로 연주 활동을 하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만 그런 바흐에게 9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큰 사건이 일어나고 바흐는 자신의 큰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Johann Christoph Bach)'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고 바흐는 큰형에게 작곡법과 작곡에 대한 기초를 배웠습니다.

15세 때는 독일 북부의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를 다니며 오르간에 대한 심화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쾨텐 궁정에서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표지

'궁정 악단의 연주자'

학교를 졸업하게 된 바흐는 1703년에 바이마르 궁정의 궁정 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일을 시작하며 여러 교회의 오르가니스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1703년 8월에는 당시 오르간의 대작곡가라 불리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의 작품과 연주에 큰 영감을 받아 자신의 화려한 오르간 곡을 썼습니다.

바흐가 한동안 오르간에 푹 빠져 오르간 곡을 작곡하는 동안 바이마르 궁정 악단에서는 바이올린 보다 오르간에 더 뛰어났던 바흐를 궁정 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직책을 바꿔주며 바흐가 오르간에 더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시기(1708~1717)에 바흐의 작품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오르간곡 들이 작곡 되었으며 이 작품들을 계기로 바흐는 자신이 존경하던 북스테후데의 작품과 비할 데 없는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 이자 작곡가로 독일에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1714년에는 궁정악단의 콘서트마스터(음악기획 분야)의 자리를 받으며 뛰어난 교회 칸타타를 매달마다 작곡하였습니다.

당시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Antoni Vivaldi)'의 작품이 유행하였는데 바흐는 비발디의 작품을 수백 번씩 보며 이탈리아 음악의 연주법과 작곡법을 공부해 자신의 작품에 적용시켰습니다.

1717년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을 떠나 쾨텐 궁정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쾨텐 궁정 악장에서 독일 내의 모든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자리인 '궁정악장'직을 받게 됩니다.

바흐를 궁정악장으로 만든 쾨텐의 영주는 바흐의 음악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였으며 바로크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정말로 이례적인 후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쾨텐 궁정의 종교가 바흐가 속해있던 루터파 개신교가 아닌 칼뱅주의의 개혁교회였기 때문에 바흐는 쾨텐에서 자신의 주 작품이었던 종교적 오르간 곡보다 쾨텐의 귀족들과 영주를 위한 세속적인 음악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이러한 쾨텐에서 작곡된 곡 중 오늘날에도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WV 1046-1051)',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파르티타(BWV 1001-1006)', '첼로를 위한 무반주 모음곡(BWV 1007-1012)' 등 바흐의 유명한 기악 모음곡들이 쾨텐에서 작곡되고 연주되었습니다.

쾨텐 궁정의 든든한 지원과 후원으로 바흐는 심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며 당시의 곡들도 그것을 반영하듯 밝은 분위기의 곡들이 많이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칸토르'로서의 바흐'

이러한 쾨텐 궁정에서 바흐는 평생직장을 꿈꿨지만 바흐를 후원하던 영주인 레오폴트가 전쟁을 위한 군비 증가와 레오폴트와 결혼을 하게 된 왕비가 음악을 싫어했던 이유 때문에 쾨텐 궁정이 더 이상 바흐에게 지원을 해주기 어려워지자 바흐는 아쉽게도 쾨텐 궁정을 떠나 1723년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교회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의 총괄 직)'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라이프치히로 거처를 옮기게 된 바흐는 1707년에 '마리아 바르바리'와 결혼을 하여 7명의 자녀를 가졌지만 1720년 마리아가 병사하며 1721년에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을 하여 13명의 자녀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20명의 자녀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반절 이상이 어릴 때 열병으로 사망하게 되고 바흐는 큰 슬픔에 빠지지만 남은 자녀들은 후에 선천적으로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채로 성장하게 되고,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Wilhelm Friedemann Bach)', 차남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는 아버지 바흐의 뒤를 이어 모두 음악사에 이름을 올리는 고전시대의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됩니다.

바흐는 자신의 어린 아들들을 위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BWV 846-869)' 작곡하게 됩니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남은 일생을 살아가게 된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머무르며 '마태수난곡(BWV 244)',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BWV 248)' 등과 같이 유명한 교회 칸타타를 160곡 이상 작곡하였으며 1724년 이후로는 세속 칸타타와 기악곡 작곡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작곡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1747년에는 포츠담의 궁정으로 가 프리드리히 대왕을 만나 왕이 건네준 하나의 플루트 주제를 가지고 즉흥연주를 하여 찬사를 받았고 이에 영감을 받아 '음악의 헌정(BWV 1079)'을 작곡하여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헌정을 합니다.

1748년에는 바흐의 최후의 걸작이라 불리는 '푸가의 기법(BWV 1080)'의 작곡을 시작하였지만 당시 뇌출혈로 인해 시력이 크게 떨어지며 작곡이 힘들어졌고 눈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의사를 불렀지만 하필 이 안과의사가 후에 헨델의 눈을 멀게 한 장본인인 존 테일러라는 돌팔이 의사였기에 바흐는 백내장이 더 심해지고 비위생적 수술이 감염증을 일으켜 결국 1750년 7월 28일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바로크 시대의 바흐와 고전시대의 바흐'

서양 음악사에서 큰 과도기라 할 수 있는 바로크 음악사에 있어 바흐는 독일 음악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여러 음악의 작곡법을 연구해 하나로 뭉쳐 자신의 교회 칸타타를 작곡한 뛰어난 음악가였으며 '대위법(두 개 이상의 선율을 이용한 보편화된 작곡법)'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확립한 작곡가이자 춤곡, 성악, 기악, 여러 형식의 음악을 넘나드는 곡을 작곡한 뛰어난 바로크 음악가 였습니다.

다만 바흐는 생전에 자신과 동일한 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 텔레만과 달리 국제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아닌 독일 안에서만 활동을 하며 명성을 쌓았었고 더군다나 헨델처럼 음악가의 자유로운 인생을 산 게 아닌 교회 음악가로서 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당시에는 바흐의 사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크 음악시대가 지나고 고전시대가 시작되며 바흐는 자신의 아들들을 통해 후대의 음악가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고 모차르트는 바흐의 악보를 직접 사보 하며 자신의 푸가 기법을 발전시켰고 베토벤 또한 바흐의 아들인 제바스티안 바흐를 찬사 하며 바흐 가문의 기법을 배웠습니다.

후에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연구서에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실으며 바흐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가가 됩니다.


'글을 마치며'

흔히 쉽게 접하고 주변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자세히 보지 않기 마련입니다.

음악가 중에 있어서도 바흐, 헨델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부터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배우기 때문에 친근하기도 하지만 막상 알고 보면 아는 게 별로 없는 작곡가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흐라는 음악가는 독일에서 수백만 킬로가 떨어진 대한민국의 어린 꼬마들도 아는 작곡가인 만큼 뛰어난 작곡가였으며 바흐가 남긴 음악이 바흐 생전과 사후 당시 독일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는 바로크라는 음악사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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