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 만으로도 과연 당신은 나의 직업을 유추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말과 글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문장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이지만 만약 이 표현으로 내 직업을 유추해 내었다면 당신의 센스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아마 그 추측이 어느 정도는 근접했을 것이다. '옮긴다'는 표현이 제법 큰 힌트가 되었을 것 같은데 내 예상이 맞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여전히 내 직업에 대한 당신의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으리라.
어려서부터 스스로와의 대화가 많은 아이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만화영화도 즐겨 보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더랬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생활한 덕분에 모국어 외에도 편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기에 자연스레 내 가치관도 두 가지 이상의 문화적 색채를 띄게 되었다. 살다보니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것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두서없이 쏟아내는 말들 속에서 그 사람이 전하고 싶어 하는 키워드를 발견할 때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전문 통번역사이다. 햇병아리 시절부터 돌아보니 어느덧 14년치 커리어가 쌓였다. 그 세월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글을 해석하며 살다보니 말과 글을 포장하는 기술이 늘었다.
"제가 한 말보다 깔끔하고 듣기 좋은 문장으로 바꿔주어서 고마워요" 종종 듣는 칭찬이다.
"이게 제 일인걸요" 그때마다 하는 대답이다.
남들이 하는 말은 예쁘게 잘 포장할 자신이 있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내 이야기를 꺼낼 때면 두서없음에 낯부끄럽다고 느낄 때가 어찌나 많은지. 평소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꽁꽁 숨겨둔 이야기들이 많은 탓에 기회가 되면 속에 담아둔 말들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편한 사이라면 아마 나를 수다쟁이라고 생각하겠지.
오래전 '싸이월드'라는 소셜플랫폼이 있었다. 그곳에서 혼잣말처럼 풀어놓은 일기장을 읽은 지인이 "나중에 책으로 엮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주었던 것을 마음 한켠에 버킷리스트로 기억해 두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해 보리라. 하지만 글 한 줄 적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하물며 책이라면 영원히 그 글이 박제되는 것이니 마음먹기가 쉽지 않아 상상만 해보았다. 언젠가는 나의 글,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글쓰기는 정직한 행위입니다. 쓰는 만큼 늡니다. 제가 해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래, 나도 한 번 시작해 보자. 스스로와 친해지는 거라고 생각해 보는 거야. 이게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