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일상 기록하기

by 낭만팔레트

"오늘은 뭐 했어?"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는 타입인지 궁금하다.

오늘 하루 만났던 사람, 먹었던 음식, 나누었던 대화들,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유형일 수도 있고, 아니면 "늘 똑같지 뭐"라며 말을 아끼는 부류의 사람일 수도 있으려나.


그렇다면 당신의 일기장은 어떤 식으로 쓰여 있는지도 궁금하다. 남에게 공개해도 되는 나의 일상과 나 혼자만 들여다보는 나의 일상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 연예인들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SNS 계정과 정말 친한 지인들에게만 공개하는 계정을 별도로 관리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일기장도 그러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일 테니까. 그곳에 시시콜콜하게 느낀 감정들이나 일상의 요소들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편인지, 아니면 정말 기억하고 싶은 내용만 간단하게 적어두는 편인지. 참고로 내 경우에는 전자다.


내 기억 속 첫 일기장은 어린 시절 학교 숙제로 써내던 공책들이다. 그 시절의 일기는 대개 오늘의 날씨로 시작해서 참 즐거웠다 는 식의 감상으로 끝났던 기억이 난다. 방학이 되면 한 달 치를 몰아 쓰느라 어찌나 팔이 아프던지. 나중에는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하루를 지어내기 십상이었다. 그러고보니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강제로 공개되는 그 시절 일기장은 순수한 어린이여서 가능했던 숙제였다는 생각이 드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사생활을 침범당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순순히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드러났던 꼬맹이 시절. 요즘도 일기장 검사를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몇 해 전 읽었던 김이나 작사가의 책 '보통의 언어들' 속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나는 이 쳇바퀴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다.' (중략)
특별한 하루라는 것은 평범한 하루들 틈에서 반짝 존재할 때 비로소 특별하다. 매일이 특별할 수는 없다. 거대하게 굴러가는 쳇바퀴 속에 있어야지만, 잠시 그곳을 벗어날 때의 짜릿함도 누릴 수 있다. 마치 월요일 없이 기다려지는 금요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한창 COVID-19 바이러스가 유행하여 평범한 일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분명 하루 24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지만 마치 잃어버린 시간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 나에게는 쳇바퀴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여기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내 시간이 잘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장치가 필요했달까. 그래서 퇴근 후에 집 근처 호수공원을 걸으며 나만의 포토스팟에서 매일 인증샷을 찍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그것이 일상 기록의 시작이었다. 같은 장소여도 구름 모양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새삼 신기해하며 내 삶도 이렇듯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겠구나 싶었다. 길었던 해가 어느새 조금씩 짧아지는 것을 실감하며 두 달 남짓 기록했었다. 간단한 영상으로 만들어보니 제법 뿌듯하더라.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모여 내 삶을 특별하게 해 주는 경험을 하게 된 나는 기록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원래도 일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때부터는 정말 시시콜콜한 일상들까지 기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점심메뉴까지 적어두다보니 누군가 "이번 주 화요일에 우리 뭐 먹었더라?" 하고 물어보면 내 일기장에 답이 적혀있었다. 읽었던 책 속의 인상 깊었던 구절들도 적어두고, 드라마 속 대사도 적어두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도 함께 기록해 둔다. 그래서 이따금씩 번아웃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올 때면 나의 일기장을 들춰보곤 한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내가 적어놓은 문장을 보고 내가 위로를 받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박보영 배우가 일기 쓰는 사람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만약 자신이 불의의 사고 등으로 죽음을 대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일기장을 태워달라고 친한 친구에게 부탁해 두었다는 말이 꽤 공감이 갔다. 물론 나는 그녀처럼 일기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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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 무난하다. 보통이다.


나는 이 단어들을 애정한다. 만약 지금 나의 삶이 평범하다면, 무난하다면, 보통의 삶이라고 여겨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살아보니 알겠더라.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무 일 없이 지나가주는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는 그 대단히 어려운 평범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 못했던 나날들의 기록은 내가 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침이 되어준다. 알람소리를 듣고 눈을 뜨고, 삼시 세끼를 무리 없이 섭취하고, 과도한 감정 소모 없이 편안한 대화들을 주고받으며,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자세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삶.


이것은 무료함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이 시간이 언제 지나가려나 싶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오늘도 잘 살아냈음을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식사 Clear, 수면 Clear, 운동 Clear. 이런 식으로 나의 평범한 하루를 확인시켜주는 항목들에 체크마크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일기장을 펼친다. 가능하다면 틈틈이.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기록해야지. 사춘기 시절에는 힘들어서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때에만 일기장을 펼쳐 그곳에 감정을 쏟아내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펼쳐보니 너무 우울해서 마음이 아프더라. 그래서 이제는 그저 매일의 순간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가능하면 평범하고 무난한 보통의 날을 추구해보려 한다.


그렇게 일상을 기록하며,

나는 오늘도 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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