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

기다려주기

by 낭만팔레트

○○○, 그런 일이 있었다며? 너 알고 있었어?


오래 보고 싶은 사이일수록 궁금한 것이 있어도 일단은 기다리는 편이다. 가끔 나의 이러한 태도가 상대에 대한 무관심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굳이 변명하지는 않지만 사실 나의 기다림은 대부분의 경우 무관심이 아닌 상대를 위한 배려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배려를 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겠지. 내가 알아야 할 이야기라면 말해주겠지.

이것이 나름의 상대방과 우리 관계에 대한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살다 보면 이따금씩 제3자를 통해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대부분은 소문이지.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안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 어느 쪽이든 내가 상대방과 가까운 사이라면 당사자가 나에게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본다.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라면 그런 사실이 없거나 나에게 말하고 싶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가 툭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면 나는 마치 지금 처음 알았다는 듯이 귀 기울여 듣는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그러다 들키면 말해주는거지 뭐. 사실 나 알고 있었는데 기다렸어, 너한테 직접 들으려고.


최근 일본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었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아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마음이 먹먹해졌다. 알고보니 나의 오랜 지인이 번역한 책이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tmi.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는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회사 일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보통은 "일은 할 만하냐?" 하며 물을 법도 한데.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처음 만나는 데다 부모로서 자식이 일은 잘하고 있는지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할 터였다.(중략)
아버지는 끝끝내 내게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런 부자연스러운 태도에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가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그나저나 젊은 사람들은 참 좋겠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대뜸 아버지의 입에서 대화와 상관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뜬금없는 그 말을 듣고 나니 확신이 섰다. 아버지는 내가 회사를 관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게 마음을 써주느라 일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던 것뿐이다.


때로는 기다려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마주할 준비가 될 때까지 등등.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오죽하면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다 존재할까.


나에게 기다림이란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다. 기다림의 끝에 설령 이별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나는 너의 마음을, 속도를 존중하고 싶다. 때로는 그러한 내 모습이 무심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오래갈 수는 없을까. 나는 그렇게 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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