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에너지가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작은 휴대폰 화면과 PC 모니터 화면에 갇혀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날이 어찌나 많은지. 몸을 많이 움직이는 바쁨도 있지만 생각할 것들이 많아 심적으로 분주한 때도 참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원래 바쁜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던가. 가끔씩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요일감각조차 없어지는 때를 지나다 보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물론 바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축복이긴 하지. 바쁘게 사는 덕분에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기도 하니까.
Work-Life Balance. 줄여서 워라밸. 말 그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단어.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주어진 삶을 보다 건강하게 영위하기 위한 나만의 요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산책하기였다.
나에게 산책이란 ⏸️일시정지(Pause) 버튼과 같은 장치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재생(Play) 버튼이고,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아등바등 질주하는 것이 빨리 감기(Forward) 버튼,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뒷걸음질 치는 삶이 되감기(Rewind) 버튼이라면,
⏸️숨 고르기나 도움닫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 일시정지(Pause) 버튼이랄까.
산책은 보통 30분 정도 소요된다. 사무실 근처에 큰 공원이 있어서 업무시작 전 또는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걷는 편. 걸을 때에는 음악도 듣지 않고 핸드폰도 보지 않는 것이 원칙. 아, 기록용 사진을 찍는 건 예외다. 오롯이 내면의 소리에만, 나를 둘러싼 자연환경에만 집중하는 시간.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같은 코스여도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걷는 시간대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어떨 때는 흙내음이나 비 냄새가 짙게 느껴질 때가 있고, 아침햇살을 받은 나뭇잎들 사이로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아름다울 때도 있고, 피어난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도 있다. 자연이 온몸으로 내뿜는 생명의 기운에 집중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내면의 감정들, 해결되지 않아 두통을 유발하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여기까지 쓰고선 문득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쩌면 나의 MBTI를 유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아마 당신이 예상하는 그것이 맞을 것 같다.
악보에 음표가 있고 쉼표도 있듯이 삶에서도 스퍼트를 내어 달려야 할 때가 있고 잠시 쉬어가는 때도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들어 집중력과 방향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에너지가 줄어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도전해 보았다면 이제는 방향을 정해서 집중할 때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올바른 방향에 에너지를 오롯이 집중하기 위한 숨 고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산책은 계속되고 있다.
내 사람들을 더 너그럽게 대하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내가 맡은 일을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형태로 잘 완수하기 위해서.
내 생활이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을 맞춰나가며 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