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챙기기
생일. 한 생명이 탯줄을 끊고 무사히 태어난 날.
'귀 빠진 날'이라는 말이 있다. 찾아보니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가장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태아의 머리가 나오는 순간인데 보통 태아의 머리는 자신의 어깨너비보다 크기 때문에 귀가 보이는 것이 순산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귀 빠진 날이라는 말에는 무사히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20대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매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일이었다. 내가 생일을 챙기는 대상들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더라. "생일 축하해" 라며 축하할 수 있는/축하해주는 이가 내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생일을 핑계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돌아보기도 한다. 생일을 챙겨줄 만큼 가까운 사이인 누군가가 지금 곁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감사할 만한 일인 것이다.
매년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절친한 사이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생일 축하해"가 1년만 유효한 경우도 생각보다 많더라. 그런 의미에서 매해 누군가의 생일을 챙길 때마다 마음을 담는 편이다.
부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온전히 기뻐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본다. 평소 자주 보는 사이라면 최근에 뭘 갖고 싶어 했는지 서로 나눴던 대화들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면 취향에 맞게 고르거나 직접 물어보는 편이다(사실 이게 제일 깔끔). 혹시 생일자 본인이 위시리스트를 담아두었다면 그 중에 마음이 가는 선물이 있는지 참고하기도 한다.
최근 축하해 주었던 지인의 위시리스트에는 세계문학전집이 담겨있었다. 책의 첫 문장만 보고 골라서 보내주는 신박한 기획이라 보내는 입장에서도 어떤 책일지 알 수 없어 두근거리고 설레더라. 다행히 받는 이가 직접 옵션을 변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부담 없이 보냈는데 "올해 받은 것들 중에 가장 설레는 선물이었어 고마워"라며 도착한 책의 인증샷을 받았다. 참 다행이다. 내 마음이 잘 도착했구나.
생일이 누구에게나 행복한 날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행복해야 할 것만 같은 그날의 분위기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부디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누군가의 용기로, 위대한 인내로,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n년전에 탯줄을 끊고 무사히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살아낼 수 있었음을. 그리고 당신이 태어난 그날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내가 곁에 있음을.
생일이 뭐 별 건가 싶은 사람? 완전 별거다. 그 핑계로 당신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일을 챙기며 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