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음식 취향 파악하기

by 낭만팔레트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아이스브레이킹 단골질문 중 하나. 먹는 것에 꽤 진심인 한국인은 서로를 알아가는 첫걸음으로 상대방의 음식 취향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같음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다름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아무튼.

의례적인 멘트로 별 뜻 없이 툭 던진 질문일 수도 있고, 심지어 상대방은 내 음식 취향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나는 이 질문이 무겁게 느껴져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이라면 조금 더 가볍게 넘겨도 되었을텐데. 그때는 뭘 그리도 진지하게 고민했던걸까 과거의 나여.


"한식 좋아해요"라고 하면 매일 집밥만 먹어야 할 것 같고,

"파스타 좋아해요"라고 하면 매일 파스타집만 찾아다닐거라 생각할 것 같고,

"빵 좋아해요"라고 하면 밥은 안 먹고 빵만 먹나 생각할 것 같고,

"국물요리 좋아해요"라고 하기에는 안 좋아하는 탕 종류도 있고,

"떡볶이 좋아해요"라고 하기에는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식 좋아해요"라고 하기에는 생선보다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 좋아해요"라고 하기에는 고깃집을 자주 다니지는 않는단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할 때 어느 정도 좋아함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지 늘 궁금했지만 앞으로도 그 답을 얻는건 어려울 것 같다. 휴.


며칠 전 직장 동료와 점심식사를 하며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스몰토크도 할 겸 이 주제를 꺼내봤다.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저는 고기 들어간 거라면 다 잘 먹어요"

"어 저돈데. 고기 좋아하시는구나"

○○님 고기 좋아함 입력 완료.

앞으로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이분이 고기 들어간 메뉴를 시키나 안 시키나 보게 될 것 같다. 하하.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가. 어느 모임을 가더라도 초반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이 주제가 자주 등장하다보니 한 번은 정리가 필요했다. 사실 특별한 기호가 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건데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무난하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그런 대답이 필요했다.


한식/일식/중식/양식/분식 ---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너무 카테고리가 한정되는 느낌이랄까.

특정 메뉴 지정 --- 일주일에 최소 몇 번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패스.

특정 맛 지정 --- 이건 몇 번 해봤다. 슴슴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알려드림. 낫 어 배드 초이스.

특정 재료 지정 --- 대체로 이 방법을 택하고 있다. "저는 계란요리를 좋아합니다"

오므라이스 계란말이 계란찜 삶은 계란 오믈렛 계란프라이 스크램블에그 달걀볶음밥 계란빵 심지어 계란과자까지.

YQQUew9WsdKdF3ziRw-aYTOJ9ZM.jpg 다양한 계란요리의 변주들

음식점을 고를 때 나의 기준은 '맛'보다는 '분위기'에 치중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자극적인 맛보다 슴슴한 맛을 선호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표현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싶기도 하다. 특정 음식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잘 요리된 음식이라면 대체로 잘 먹으니까. 서브하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무드의 가게라면 금상첨화!


나에게 음식 취향 찾기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 마치 숙제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왠지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랄까. "아무거나 잘 먹어요" 같은 말로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본인의 취향을 스스로도 잘 알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겪고 나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더라. 음식점을 고를 때에도 나만의 기준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혹자에게는 '건강한 음식 먹고 싶을 때 같이 가면 좋은 사람'으로 입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슴슴한 음식이 취향을 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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