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

눈 마주치기

by 낭만팔레트

아이컨택. 눈 맞춤.

쑥스러울수도 있지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면 으레 이런 말을 던지곤 한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이야기해봐."


동공지진. 눈빛이 흔들리는 찰나의 순간.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숨길 수 없이 이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눈의 대화'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눈동자를 통해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몇 초간 연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한 마디 대사 없이도 진심이 통하는 경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사자들만 느끼는 두근거림.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도 한 번의 눈 맞춤이 더 강렬한 법이다. 나는 그 감정을 낭만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시선이 아닌 마음이었다고 기록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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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차통역을 하다 보면 눈 맞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통역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실상은 통역사가 아닌 발화자의 말을 듣는 것이기에, 통역을 하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아이컨택을 자제하는 편이다. 불필요한 눈 맞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연중에 '통역사와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대화가 오갈 때나, 상대를 칭찬하거나 호의를 얻을 필요가 있는 순간에는 눈 맞춤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확인한다.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혹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충분히 전달되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에는 수줍음이 많아 대화할 때 눈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왠지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기도 하고. 감정표현에 서툴렀던 만큼 아이컨택도 어려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대화를 잘하고 싶다면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나서부터 의식적으로 눈을 맞추며 대화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느낌은 아니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그시 바라보며 대화하려고 애쓴다.


아직도 어색한 관계에서는 눈을 마주치기가 어렵다고 느끼곤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타이밍을 의식하며 눈 맞춤의 강도를 조절한다. 상대에 따라 리액션이 거의 없어 내 말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이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내 눈을 바라보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이해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뿌듯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며 느끼는 보람이랄까. 이 맛에 내가 이 일을 한다고 느끼는 순간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경청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보니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조금 긴장했었는데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습관의 힘을 느끼곤 한다. 문자나 이메일로만 소통할 때보다 직접 만나서 대화할 때 거리가 한층 좁혀지는 것도 비슷한 일 것이다.


10년 넘게 통역 일을 하면서 나에게 생긴 직업적 모토가 있다.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전달하는 통역사가 되자."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뉘앙스의 단어 선택뿐 아니라 진심을 담은 눈 맞춤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제스처. 눈을 과하게 깜빡이지도, 뚫어져라 쳐다보지도 않고, 지그시 마음을 담아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야말로 통역사로서 오랜 시간 일하며 쌓인 노하우이자 서로의 거리를 한 뼘 좁히는 치트키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단어를 주고받지만,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 어린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마음의 거울'이라 부르지 않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말주변이 없어 두서없이 말하게 될까봐 망설여진다면, 손편지를 쓰거나 내 마음을 대신해 줄 꽃말을 가진 작은 꽃다발 하나를 건네며 지그시 눈을 바라보는건 어떨까. 아마 일방적인 마음이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이 진심을 담았다면, 그 마음은 분명히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오늘 우리 삶에 낭만 한 스푼을 더해보자.


이 글을 읽으며 진심을 전하고 싶은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작전 성공이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처음이니까. 나의 진심을 담아 당신과 눈을 맞추며, 그렇게 우리는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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