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독서하기
해외에 거주하던 시절 아빠가 한국으로 출장을 가시게 되면 내 선물은 늘 동화책이었다. 과자나 초콜릿도 사 오셨지만 항상 나는 캐리어 속에서 아빠가 어서 책을 꺼내주시기를 기다렸다. 세계문학전집처럼 출판사에서 책마다 번호를 매겨 놓은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다음에 읽고 싶은 책 번호를 적은 꼬깃꼬깃한 종이를 아빠에게 쥐어드리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선물 받은 책들은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에 서 있던 어린 나에게 어쩌면 한국어로 적힌 책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면서부터는 집 근처 도서관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글씨를 잘 읽지도 못하는 동생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렇게 양쪽 언어의 책을 골고루 읽었던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서 지금 내가 통역사로서 일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교복을 입던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나는 학교 도서관을 좋아했다. 종이책 냄새를 좋아하는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해외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 중에도 서점이 포함된다. 아무래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그림책 위주로 구경하게 되긴 하지만. 평소에도 실용서적보다는 주로 소설이나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눈에 보이는 활자 너머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즐겁다. 그렇다보니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좋아한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갖는 부모가 되고 싶은 로망이 있다.
나는 단어의 서랍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뇌 속에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단어들이 언어별로, 상황별로 정리가 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각각의 서랍에 들어있는 단어들을 적절히 꺼내서 쓰는 거라고 내 멋대로 상상하곤 한다. 통역을 하다 보면 같은 상황이라도 선택하는 단어와 표현하는 뉘앙스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나 외교/안보가 얽힌 상황에서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에 단어의 서랍을 최대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 있다. 여러 상황에 맞게 꺼내어 쓸 수 있는 단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딱 맞는 뉘앙스의 단어로의 치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역량을 키우는 것이 나에게 일을 맡긴 클라이언트에 대한 예의이자 매너라고 생각하며 꾸준히 단어의 서랍을 채워나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꾸준한 독서는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잘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내가 활자로 보고 읽을 수 있는 단어여도 실제로 특정 상황에서 그 단어를 써보지 않으면 그것은 "내 단어"는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의학이나 과학 등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분야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을 한번 떠올려보자. 한글을 뗀 사람이라면 거기 적힌 단어를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 있다. 그리고 정확한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게 될 수 있다. 대학원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15년 이상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아찔함을 체감했기에 독서는 여전히 내 자양분이자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독서의 분량은 많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책을 도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라는 사실이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제목에 끌리거나 목차에 끌리거나 좋아하는 작가님이 쓴 책이 아니면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특히 지식 전달이 주 목적인 딱딱한 책들(?)을 어려워하는데 편식의 유혹을 극복할 의지가 내 안에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네.
이제 꾸준히 독서하는 습관은 자리잡았으니 스스로와 더 친해지기 위해 편식을 극복해봐야겠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법과 관련해서는 변호사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사례 등을 재미있게 엮어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혹시 자연과학, 경제, 경영 분야에서 초보들도 어렵지 않게 읽어볼 만한 책이 있다면 추천바란다. 도전해봐야지. 그렇게 많을 다(多)의 '다독'이 아닌, 다양할 다(多)의 '다독'을 다짐해보며 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