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혼자 영화 보기

by 낭만팔레트

20대 때 나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시도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혼자 영화 보기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영화 상영 중에는 어둡기도 하고 옆 사람과의 대화도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혼자 집중해서 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는 환경인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다. '혼자 밥 먹기'와 '혼자 영화 보기'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때는 차라리 전자를 택했을 정도니까.


그러다 30대가 되고, 싱글로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영화 보기를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못 할 건 또 뭐람'이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등을 떠밀어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통신사 혜택'이었다. K모 통신사 충성고객에게 주어지는, 한 달에 한 편 무료 영화 관람 혜택. 같이 영화 볼 사람 없다고 이 혜택을 버릴 수는 없잖아. 첫 시작은 그 정도로 가벼운 마음이었다.

b8e989a3428f7d945ec7027f1d64d68a.jpg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동지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원래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의 '문화가 있는 날' 혜택을 종종 활용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스스로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의 날'을 선물하게 되었다.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매달 한 편의 영화를 선정하여 예매하고는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루틴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 달을 버티는 힘이 될 때도 있었으니까 진정한 소확행이었다.


첫 시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었다. 2023년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는 혼자 이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며 깊고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괴물(Monster)'이라는 제목 때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예매했는데, 보고 나니 왜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 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훌륭했지만 그 모든 것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각본의 힘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같은 공간, 같은 사간,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쌓여온 경험, 선입견, 입장이 다르고 군중심리 등이 작용하여 왜곡된 시선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과 나약함.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내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영화를 보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요즘은 OTT 서비스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특유의 감성은 대체되기 어렵다. 푹신한 의자와 팝콘냄새, 그리고 적당히 어두운 공간. 그곳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고 나면 잔잔하게 남는 작품의 여운까지도 영화관의 감성이 덧입혀진 채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때로는 내면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곤 하는데 그 시간이 퍽 나쁘지 않다. 나도 몰랐던 내면의 감정들이 건드려질 때도 있고. 그래서 이 시간을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로 시작해서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으로 끝나버린 나만의 '문화의 날'.

웅장한 사운드나 화려한 연출 등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감질맛나게 한편씩 보러 갔던 시간들.

매달 관람 후에는 인상 깊었던 스틸컷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짧은 감상평을 남기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기록이 흐지부지해졌다. 한동안 바쁘게 지내기도 했고 OTT 구독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예매했다. 이번에 볼 작품은 'King of Kings'. 북미 박스 오피스를 휩쓴 화제작이 한국에서도 개봉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기대가 된다. 보고 나서 오랜만에 기록평도 남겨봐야지. 이를 계기로 잠시 멈춰있던 나만의 '문화의 날'이 다시 부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다시 혼자 영화관을 찾으면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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