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

일상을 궁금해하기

by 낭만팔레트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 일에 관심이 없다.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소심한 성격인 나에게 이 말은 종종 위안이 된다. 잠들기 전 이불킥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문장으로 마인트 컨트롤을 하곤 한다.

괜찮아, 생각보다 남들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잊고 잠이나 자자!


어렸을 때에는 저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나를 위로하려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나에겐 자꾸 떠올라 잠 못 이룰 만큼 괴로운 그 순간이 남들의 기억에도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더라. 남들에게는 그저 웃고 지나가는 해프닝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자신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닌 이상,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넘어갈 일인 것이다. 사는 게 참 그렇더라.


살면서 몇 번 소모임 리더를 맡은 적이 있다.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리더를 맡았던 경험은 나의 역량 향상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힘도 돌아보면 그때 길러진 것 같다.


두 명이 모이든 열 명이 모이든 리더는 자리를 지켜야 했다. 모임을 이끌 뿐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돌봄의 역할도 필요했다. 요즘은 왜 모임에 잘 안 나오는지, 이대로 그만두려는 것인지 등등. 멤버들의 컨디션을 살피는 일도 종종 나의 몫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꾸만 나에게 고마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연락해줘서 고마웠어."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웠어."
"언제든지 모임에 나올 수 있게 자리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어라?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고마워한다고? 그저 모임이 없어지지 않게 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만 물었을 뿐인데 고맙다는 인사를 들어도 되나?


그저 책임감이 강한 성향이라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데 과분한 인사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내게 그런 고마움을 표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들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남들에게 관심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남이야 모임에 나오든 말든 관심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바쁘고 분주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굳이 안부를 묻지 않는다. 심지어 옆 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걸.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굳이 리더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금씩, 노력했다. 그렇다. 남에게 관심을 주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더라.


"지난번 다녀온다던 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우리 연락 안 한 지 좀 된 것 같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볼까?"

"어머니 편찮으시다더니 좀 괜찮으세요? 퇴원은 하셨는지..."


그러자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나의 변화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연락할 때까지 연락도 잘 안 하고 그렇게 무심하더니 요즘은 자기 안부도 먼저 물어봐주고 조금 달아진 것 같다고. 머쓱하게 웃으며 "내가 그랬었나?"라고 대답하면서도 내 변화가 싫지 않았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 예전의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준 사람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의 한마디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했어요. 고맙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나비효과처럼 사람을 살린다.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관심은 노력이고, 노력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무리하진 않아도 된다. 다만, 적어도 지금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기분은 좀 어떤지, 삶의 변화는 없는지.


꽃에 물을 주듯 나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를 살아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은 가까운 가족부터 챙겨보자.

"엄마, 요즘 날도 더운데 잠은 잘 주무세요?"

"아빠, 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힘드시면 쉬엄쉬엄 하셔도 돼요."

"동생아, 이따가 퇴근하면서 영상통화나 할까? 조카들은 아프지 않고 잘 크고 있지?"


쓰다 보니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 되어 버렸네. 하하.

당장 오늘부터 다시 실천해 봐야겠다. 이 중요한 것을 자꾸만 잊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분주히 보내고 나면 후회만 남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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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어때?"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당신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그렇게 당신과 친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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