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들여다보기
말을 옮기는 일을 하다 보니, 혼자만의 목표가 하나 생겼다. 글로 적고 보니 괜히 거창한 것 같지만, 그건 바로 단순히 말만 옮기지 말고 마음속 의도까지 전달할 수 있는 통역사가 되는 것.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본인의 의견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무의식일지라도 의도가 있는 법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을 전할 때에도 "좋아해"와 "사랑해"는 다르고, "달이 예뻐서 네 생각이 났어"는 또 그 나름의 온도를 담고 있다. 한국은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편하게 사용하는 편이라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남들 앞에서는 이 표현을 잘 쓰지 않기도 하고, 어색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표현마다, 단어마다 사용된 문맥에 따라 무게나 온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적절한 표현과 단어로의 옮김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통역도 번역도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다. 특히 표현 하나, 단어 하나, 표정 하나에도 찰나의 판단이 요구되는 통역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직업임을 늘 체감하고 있다.
감정을 배제하고 워드 바이 워드로 직역하는 것이 최선인 현장도 분명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는 현장은 대부분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꽤 중요한 편이다.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서로의 입장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농담을 하면 상대가 웃게 만들어야 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상대로 하여금 진지하게 듣게끔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다. TMI지만 오래전 동시통역 부스에서 통역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 연사분이 회심의 아재개그를 날리셨고, 순간 마이크에 대고 "웃으시는 타이밍입니다. 웃으세요"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고, 프로의 세계에선 민망한 에피소드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연사로 하여금 자신의 농담이 잘 전달되었다고 믿게 하는 것 또한 내 역할이었으니까.
이렇듯 화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문화에서 통용되는 적절한 언어로 바꿔주는 것이 직업이다보니 일할 때만큼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잘 읽어내는 편이다. 물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렇다. 분명 내 마음인데도 가끔은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을 때가 왜 이리도 많은 걸까. 남의 마음은 눈치껏 때려 맞춰보지만 정작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헷갈리는지.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갈 때가 많다는 사실을, 나도 일기를 쓰면서 깨달았다.
나는 왜 기쁜걸까? 왜 화가 나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억울할 일인가?
이 상황이 화가 나는거야? 아니면 저 사람의 말투나 태도 때문에 기분이 나쁜거야?
나를 칭찬해 준 것이 기쁜거야? 아니면 나에 대한 호감을 확인한 것이 기쁜거야?
나를 가장 오해하지 않고 마음속 의도를 곡해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쳐있는 나를 돌보는 방법 중 하나는 내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실 별건 없다. 그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행렬.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으니 내가 나에게 해주는 수밖에. 이것이 내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나의 비법 아닌 비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명 없이, 합리화 없이, 솔직하게 내 감정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디테일한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어느새 내 감정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이해되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단어'에 민감한 편이다.
아까 그 상황에서 그 표현을 쓰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그 말 대신 이렇게 전하는 것이 더 나았을까?
혹시 내 의도를 상대방이 오해하게 만든 표현들은 없었을까?
왜 방금 전 대화에서 그 단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민감한 부분이 어디였는지 보인다.
이런 말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구나.
이 표현은 불편했음을 솔직하게 말해줘야겠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해보는 중이다.
살아보니, 누구에게든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참 중요함을 느낀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사람은 고독해진다. 반면, 단 한 사람이라도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가 있다고 느낄 때 나는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 먼저 나부터 나를 이해해주자. 이건 결코 합리화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왜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거야!"라는 식의 항변이 아니라, 정말 그 선택이 나에게 최선이었는지, 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내 마음은 어땠고 지금은 어떠한지 잘 들여다보자는 말이다.
내가 건강해야 주변 이들을 건강하게 대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정성껏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가 들수록 사무치게 느끼는 중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 안의 다양한 감정의 레이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스스로와 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