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윗한 함정을 경계하라
(甘い)

2025.12.5 요미우리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맛을 느끼는 감각인 미각에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이 있다. 김치나 불닭처럼 한국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매운맛'은 사실 미각이 아니라 통증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에 가깝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끼는 이유도 그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뇌에서 '엔도르핀'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도 묘한 쾌감을 느끼는, 참으로 신비로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맛을 가장 좋아하는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요미우리신문 사설에서 흥미로운 표현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어 '甘い(아마이)'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달다'라는 뜻이지만, 사람의 태도를 표현할 때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오늘은 이 표현을 중심으로 일본어의 뉘앙스와 그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려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태도는 보통 엄격하거나 관대한 두 유형으로 나뉜다. 이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서도 종종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


일본어 甘い는 이 중에서 '관대하다', 즉 한국어로 '오냐오냐하다'에 가까운 의미로 쓰인다.

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정하다'는 일본어 優しい(야사시이)를 사용한다. 優しい 부모는 애정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되, 필요할 때에는 단호하게 바로잡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甘い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알고도 제대로 꾸짖지 못하고 넘기기 때문에, 설령 나중에 혼내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영어의 sweet가 긍정적 의미로 확장된 것과 달리, 일본어의 甘い는 '과한 관대함이 오히려 상대를 망친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표현이 甘える(아마에루)이다. '응석을 부리다', '어리광을 피우다'라는 뜻으로, 상대가 나에게 관대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태도다. 일본 드라마에도 자주 보이는 「お言葉に甘えて(오코토바니 아마에테)」(당신의 말씀에 응해서,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라는 표현도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 중 마지막 한 입을 먹도록 상대가 권했을 때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먹겠습니다"라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언급한 요미우리신문 사설에서 甘い는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사설의 배경은 한 대학병원에서 벌어진 뇌물수수 사건이었다. 기업 기부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건이 밝혀지자, 사설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決して許されない行為で、東大のチェック体制の甘さも問われよう"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며, 도쿄대의 관리감독 체계의 느슨함도 문제 삼아야 한다)


이 문맥에서의 甘さ(아마사)는 '관대함'보다 '허술함' 또는 '느슨함'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단맛은 여기에서 '규범을 무너뜨리는 위험'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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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다'는 원래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고 호의적인 맛이다. 그러나 일본어 문화권에서는 이 단맛이 '지나친 관대함', '의존', '규율의 해이' 등 부정적 개념으로 확장되어 왔다.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경계하는 태도가 언어 속에 스며 있는 셈이다.


맛은 즐거움이지만, 기준을 흐리는 달콤함은 때로 독이 될 수 있다. 일본어 甘い가 보여주듯, 지나친 부드러움은 규칙을 약하게 만들고 책임을 흐릿하게 만든다.


사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균형 잡힌 맛은 조화를 이루지만, 과도한 단맛은 결국 전체의 맛을 망쳐버린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는 힘은 늘 편안한 '달콤함'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만큼의 '쓴맛'일 것이다. 달콤함이 언제든 유혹처럼 다가오는 만큼, 우리는 그 쓴맛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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