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ダブルネーム)

2025.12.11 도쿄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누군가와 처음 만나면 자기소개를 한다. 그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름이다.

상대가 나를 부를 수 있는 호칭을 알려주는 것. "저를 OO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주로 일본 사람들을 비즈니스 현장에서 만난다. 그래서 일본인과의 첫 만남에서 빠지지 않는 절차가 명함 교환이다. 매우 정중하게 명함을 주고받으며 소속과 이름을 전달한다. 미팅 중에는 테이블 위에 명함을 올려두고, 실수로라도 이름을 잘못 부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에게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일은 상대에 대한 중요한 예의다. 같은 한자라도 이름에 쓰일 경우 읽는 법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면 먼저 물어보는 편이 낫다. 지레짐작으로 "이렇게 읽겠지"하고 불렀다가 틀리면 그 자체가 더 큰 실례가 된다.


일본에는 약 13만 종류의 성(姓)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성에 '상(さん)'을 붙여 부른다. 갑자기 이름을 부르면 외국인이라서 그러려니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속으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구는 거지?'라고 느낄 수도 있다.


2024년 기준 성씨 TOP5인 사토, 스즈키, 다카하시, 다나카, 이토 정도가 아니라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성을 가진 일본인을 만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내 경우에도 주로 연락하는 일본인 카운터파트들의 성이 모두 다르다. 오히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한국인이 훨씬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명함을 교환했는데 다섯 명 중 두 명이 이씨, 세 명이 김씨라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게다가 받침 구분이 어려운 일본인들에게 '영호'와 '용호'의 차이를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어로는 둘 다 ヨンホ라고 표기된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해시키고 정확히 발음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깝다.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은 참 어려운 상대일 것이다.


이처럼 '이름'에 유난히 민감한 일본 사회에는 오랜 숙제가 하나 있다.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문화다. 말 그대로 결혼과 동시에 호적을 새로 만들고, 남편 쪽 사람이 된다. 한국에서는 개념적으로만 존재해 왔던 일이 일본에서는 지금도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와 가문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다나카 미호'였던 사람이 결혼과 동시에 '스즈키 미호'가 된다.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정서류상의 이름을 모두 바꿔야 한다. 명함, 각종 행정서류, 여권은 물론이고, SNS에서도 결혼 전 이름과 결혼 후 이름을 병기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름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인식이 강한 사회에서 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c28021b9357884e28e5ff40b954946e6.jpg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사실 아주 단순한 질문이다.

이름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도쿄신문은 이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부부의 성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한 불편이나 불이익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중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성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과 인격에 직결된 인권 문제다."


현행법상 결혼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의 약 94%는 여성이다. 이를 여성 차별로 판단해 법무대신의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는 1996년, '선택적 부부별성제도(選択的夫婦別姓制度)'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문제 제기는 이미 30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동일호적 동일성씨(同一戸籍同一氏)'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


최근 다카이치 정권은 결혼 전 사용하던 '구성(旧姓)'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호적상 성은 그대로 두고 일상에서만 예전 성을 사용하는 방식은 결국 'ダブルネーム(Double Name)'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차별 논란 역시 해소되기 어렵다.


선택적 별성제도 도입을 믿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커플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도쿄신문은 다카이치 정권을 향해 묻는다. 그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이냐고.


최근 '부캐'문화가 유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콘텐츠 속 이야기다. 평범한 일반인에게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해결책일까. 자신의 의지로 배우자의 성을 따르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성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제도라면, 그 자체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요즘 한일 국제결혼도 늘어나고 있다.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왜 다른 집은 가족 모두 성이 같은데, 우리 집은 엄마만 달라?"

실제로 그런 질문을 부모에게 던지는 아이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국제결혼을 통해 ダブルネーム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지킬 수 있었던 여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작은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 사람의 역사이자, 정체성이며, 삶 그 자체다.


과연 결혼은 개인의 이름을 바꿀 만큼 강력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부디 일본 정부가 최선의 길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이전 11화당신의 지역력은 안녕한가요? (地域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