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닿기를
(丁寧)

2025.12.19 요미우리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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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반복해서 오가면, 우거진 수풀이나 깊은 산속에도 어느새 길이 생긴다.

아무도 다니지 않던 곳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을 우리는 개척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한 사람의 용기보다,

수많은 반복의 흔적에 가깝다.


이 '길'이라는 개념이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길은 한자로 '道(도)'라고 쓴다.


일본에서는 이 글자에서 착안하여 예술과 수련의 영역에 '도'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도(茶道), 화도(華道), 그리고 유도(柔道)나 검도(劍道)와 같은 무예가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내듯,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들기까지 계속해서 연마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다도체험을 해본 적이 있다.

차를 내는 순서 하나, 손을 움직이는 각도 하나까지,

모든 동작에 분명한 의미와 정성이 담겨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자리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었다.


함께 내는 화과자의 종류부터 차를 담는 다기의 문양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선택된 것이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며 몸에 배도록 익힌다는 점에서,

'장인의 나라'라는 말이 괜한 수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도'라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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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는 꽃과 나무를 조합하는 예술 분야로, '이케바나'라고도 불린다.

이는 꽃을 화병에 보기 좋게 꽂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식물을 대하는 마음가짐, 공간 전체의 조화, 그리고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한다.


그래서일까.

이 화도의 매력에 이끌려 일본까지 직접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어쩌면 기술을 넘어 화도에 담긴 마음가짐을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丁寧(ていねい, 테이네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세심하게 살피는 태도,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다루는 마음가짐.


이 짧은 단어 안에는 그러한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어로 옮기자면 '열과 성을 다하다'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숙박세'를 다루는 사설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일본 각지의 도시들이 숙박세를 도입하고 있지만,

도시별로 세액과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교토는 최대 1천 엔까지 부과하는 반면,

도쿄는 100~200엔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차이는 투숙객들에게 자연스러운 의문을 남긴다.

"이 세금은 왜 걷히며,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숙박세 도입 과정에서 보다 丁寧(테이네이)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숙객에게 제도를 안내해야 하는 숙박업자들,

그리고 실제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반복하여 설명하고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납득할 수 있는 세액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저 '성실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는 번역만으로는

결코 丁寧의 뜻을 다 담을 수 없는 이유다.


본래 丁寧(테이네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군대에서 사용되던 타악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해 울리던 악기에서 착안해,

세밀한 부분까지 마음을 쓰며 살피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의 전달로 끝내지 않고,

모두에게 닿을 때까지 반복하는 자세.

그 의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본 사람들은 말투에서도, 설명에서도, 접대에서도

丁寧(테이네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어도

수없이 검토하고 논의한 뒤에야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다져진 길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어쩌면 일본의 장인정신은,

급하게 길을 넓히기보다 丁寧하게 한 걸음씩 밟아온

수많은 발자국 위에서 피어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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